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9> 박테리아 감염 : 바이러스 교란

bindol 2021. 4. 20. 04:51

콜레라 등 박테리아에 감염된 질병과 에이즈 등 바이러스에 교란된 질병은 다르다.

박테리아는 곰팡이, 효모처럼 다수의 진핵세포를 가진 진짜 균(眞菌)과 달리 하나의 원핵세포를 가진 미세한 균(細菌)이다. 박테리아와 달리 바이러스는 우리말이 아예 없다. 중국어로는 병독(病毒)인데, 박테리아도 병이 되는 독이 되기에 어설프다. '총 균 쇠'라는 책 제목도 '총 병 쇠'가 맞다. 16세기 중남미에서 유럽으로 퍼진 매독은 박테리아에 의한 병이지만, 유럽에서 중남미로 퍼트린 천연두는 바이러스에 의한 병이기 때문이다. 박테리아는 생명의 기본단위인 세포를 가진 생명체다. 영양만 얻는다면 혼자서도 살며 숙주 세포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세포가 아니라 DNA나 RNA 형태의 유전자다. 생물은 아니고 무생물도 아닌 것이 미생물(微生物)이라 하기에도 뭣한 미생물(未生物)인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 안으로 침투한다. 세포 안→ 핵 안→ 염색체 안→ 유전자 안에 비집고 들어가 네 종류 염기를 기본단위로 하는 DNA의 정상형태를 교란(攪亂)시킨다. 그러면 몸이 정상에서 벗어나 병이 생긴다. 컴퓨터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0과 1의 비트를 기본단위로 하는 디지털 데이터 안에 비정상의 비트가 들어가 작동이 이상해진다.

물을 뺀 우리 몸무게의 10분의 1은 박테리아다. 물론 몸에 이로운 놈도 있다. 우리 몸속 유전체(genome)의 10분의 1도 레트로바이러스다. 다행히도 비활성화된 것들이다. 성장할 수 있는 박테리아는 강력해지고, 변이할 수 있는 바이러스는 새로워진다. 슈퍼 박테리아와 신종 바이러스 항원이 공격할 때 몸의 항체가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인류는 파멸이다. 이를 막으려면 의학적 방어에 앞서 인간의 탐욕을 줄여야 한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