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뜻하는 한자들이 많다. 사람이 사는 집은 무엇을 뜻하고 있을까?
집을 뜻하는 이 세 한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宀을 위에 쓰고 있다는 점이다. 면(宀)은 집을 갓머리처럼 덮어씌운 지붕을 나타낸 상형문자다. 宀 밑에 클 우(于)가 들어간 우(宇)는 아주 커다란 공간의 집이다. 宀 밑에 말미암을 유(由)가 들어간 주(宙)는 아주 길다란 시간의 집이다. 합쳐서 우주는 공간적으로 무한한 크기와 시간적으로 무한한 길이를 담은 집이다. 광활한 집인 우와 주와 달리 가(家)는 사람이 사는 집이다.
그런데 왜 宀 밑에 하필 돼지(豕)가 들어갔을까? 소, 개도 아니고…. 소가 들어간 뢰(牢)는 외양간 우리일 뿐이다. 개 키우는 집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가면 갑자기 개가 튀어 나오는 것처럼 개가 들어간 돌(宀)은 갑자기 부딪친다는 돌(突)과 같은 뜻이다. 옛날에는 돼지와 한집에 붙어 살아 집 家라는 설이 있지만 이유가 옹색하다. 돼지가 우리 생활에서 뜻하는 것을 알면 돼지가 들어간 이유가 짐작된다. 돼지꿈은 복받을 꿈이다. 제사 때 돼지머리는 복을 달라는 뜻이다. 돼지저금통은 복이 넘쳐 돈도 많이 쌓이라는 뜻이다. 결국 집 안에 돼지가 있는 집 家는 돼지가 우리 집의 복을 지킨다는 뜻이다. 지키는의 '지'와 복의 'ㅂ'이 합쳐져 지복이 집이 되었을 개연성이 크다. 이렇게 따지니 家와 집은 똑같은 뜻이다.
세상에서 자기 집만큼 좋은 곳은 없다. 아무리 호화로운 호텔이나 궁궐같은 집에 가도 편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 자신의 집에는 나 자신의 복을 지켜주는 돼지 한 마리가 나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집 家! 정겹고 복스러운 글자다. 그런데 우리는 요즘 이 복스러운 돼지를 너무 학대하고 많이 먹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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