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28> 낭만과 여유 ; 무엇이 필요할까?

bindol 2021. 4. 20. 05:26

낭만과 여유!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그런데 둘 중 하나는 빈 껍데기다. 왜 그럴까?

낭만이라는 단어는 일본식 한자다. 알고보면 그 뜻이 황당하다. 낭만은 흐르는 물결을 뜻하는 낭(浪)과 흩어진 물결을 뜻하는 만(漫)이다. 그러나 낭만은 이런 물결과 별로 상관없다. 단지 로마인을 뜻하는 로만(Roman)을 한자로 빌려 쓴 단어다. 한자생성의 여섯 가지 종류인 육서 중 가차(假借)에 해당한다. 뜻과 상관없이 가짜로(假) 음을 빌려다(借) 만든 단어다. 코카콜라를 가구가락(可口可樂)이라고 하는 식이다. 그러니 낭만의 원래 뜻은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과 거리가 한참 멀다. 사전에 나오는 낭만의 정의는 실현성이 적고 매우 감정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감미로운 분위기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로마인은 인류 최초로 제국주의(Roman Empire)를 이루며 낭만과 거리가 먼 무척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여유의 한자를 풀면 낭만과 다른 인간적 여유가 느껴진다. 여(餘)란 먹을 것이 남은 상태다. 유(裕)란 입을 것이 남은 상태다. 이렇게 남았다는 것은 빈곤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전에 나오는 여유의 정의는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남음이 있는 상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먹고 입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유가 아직 있다. 굶고 헐벗는 비참한 경우는 없다. 그래서 지금 경제적 여유보다 필요한 것은 생각과 마음의 여유다. 즉 지갑의 여유보다 머릿속(mental) 여유가 필요하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머릿속 여유가 생기기도 하지만 오히려 거꾸로 머릿속 여유가 있으면 경제적 여유도 생기는 법이다. 비록 두꺼운 지갑을 갖지 못하더라도…. 머릿속 여유가 없으면 경제적 여유가 늘 부족하게 여겨진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