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단어로 바로 전회에 언급한 한량과 건달의 삶을 어렴풋이 그릴 수 있다.
노자와 장자, 이른바 노장 철학을 흔히 도교라고 하지만 둘의 사유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노자가 직접적으로 주창한다면 장자는 우화를 들려주며 우회적으로 이야기한다. 노자가 고정 관념을 비트는 패러다임시프터라면, 장자는 기존 관념을 비꼬는 스토리텔러다. 노자가 엄숙하고 진지하다면, 장자는 여유롭고 자유롭다. 노자도덕경 15장과 장자 1장에서 알 수 있다. 노자는 도의 세계를 여유엄(與猶儼) 등으로 설명한다. 살얼음 냇가를 건널 때처럼 조심조심하는 것이 여(與). 주위 사방을 망설이며 경계하는 것이 유(猶). 다른 사람 집에 머무는 손님처럼 점잖케 행동하는 것이 엄(儼)이다. 남양주에 있는 정약용 생가는 여유엄에서 앞 두 글자를 따 여유당(與猶堂)이다. 그는 조심하고 경계하는 여유(與猶)의 삶을 살았다. 장자는 도의 세계를 소요유로 이야기한다. 장자 첫 장에 유(遊)와 소요(逍遙)는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세 글자로 장자의 사유를 대강 알 수 있기에 합쳐서 소요유라 부른다. 건들건들 어슬렁거림이 소(逍). 분명한 목적없이 저 멀리 아득하게 돌아다님이 요(遙). 즐기며 노님이 유(遊)다. 세 한자 모두 급하지 않고 쉬엄쉬엄 간다는 착(辶)을 쓰니 큰 맥락에서 뜻이 비슷하다.
이렇게 본다면 노자의 여유엄과 장자의 소요유는 상반된다. 여유엄이 외부에 구속되어 있다면, 소요유는 어떠한 장애도 느끼지 않는 절대자유·절대여유다. 결국 한량과 건달의 삶은 소요유하는 삶에 가깝다. 결코 쉽지는 않다. 인간의 야망과 탐욕으로 지갑속 여유보다 머릿속 여유가 늘 빡빡하기에….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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