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픈 중국 지식인의 초상 / 일러스트=김하경
차가운 날이 오면 소리를 줄이는 동물이 있다. 한자 세계에서는 쓰르라미가 우선 등장한다. 몸집이 여느 매미보다 조금 작은 쓰르라미는 보통 한선(寒蟬)으로 적는다. 이 단어는 결국 ‘가을 매미’의 뜻도 얻었다.
날씨 탓에 매미가 소리 멈추는 현상을 성어로는 금약한선(噤若寒蟬)이라고 표현한다. 날개로 소리 내는 매미가 입을 닫아[噤] 울음 끊는다는 설정은 사리에 어긋나지만, 소리 자체가 아예 뚝 끊겨 없어지는 현상을 그렇게 적었다.
아주 시끄럽게 우는 새는 까마귀나 까치다. 자신에게 위협적인 존재나 상황이 닥칠 때 이들도 소리를 문득 멈춘다. 매우 시끄러운 새들이라 울음이 한꺼번에 없어지면 퍽 인상적이다. 그 성어는 아작무성(鴉鵲無聲)이다.
앵무새는 사람의 말을 곧잘 흉내 낸다. 완벽하지는 않으나 퍽 비슷하게 발음한다. 그 모습을 성어로는 앵무학설(鸚鵡學舌)이라고 한다. 그런 앵무새에게 죄가 있을 리 없지만, 주견(主見) 없이 남에게 그저 복종만 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이 말을 쓴다.
그보다 더한 수준을 일컬을 때는 아예 응성충(應聲蟲)이라는 가상의 동물이 등장한다. 목구멍에 사는 벌레로, 사람 소리를 그대로 따라 한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남의 지시와 명령에 온몸을 던져 따르는 아첨과 비굴의 인물을 가리킨다.
전통의 중국에서 지식인은 황제의 권력을 지탱하는 소모품, 어용(御用)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매미와 까마귀, 까치, 더 나아가 앵무새와 목구멍 속 벌레는 중국 전통 지식인들의 운명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사례가 많다.
심지어는 더 극성으로 앞에 나서야 해서 급선봉(急先鋒), 궂은일을 마다할 수 없어 말 앞으로 내뛰는 마전졸(馬前卒)이라 불리기도 한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그나마 소리를 꽤 높였던 중국 지식사회가 요즘엔 부쩍 활기를 잃는 듯하다. 중국 지식사회에 겨울이 또 닥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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