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울 리(刂-5) 쓸 용(用-0) 도타울 후(厂-7) 살 생(生-0)
周穆王(주목왕, 기원전 977∼922)이 犬戎(견융)을 정벌하려 하였다. 이때 祭公(제공) 謀父(모보)가 간언하였다.
"안 됩니다! 선왕들께서는 덕을 빛내셨지 군사력을 과시하지 않았습니다. 무릇 군사는 거두어 두었다가 알맞은 때에 움직이는 것이니, 그때 움직이면 위세를 떨칩니다. 그러나 함부로 과시하면 웃음거리가 되고, 웃음거리가 되면 위세를 떨치지 못합니다. 이런 까닭에 周文公(주문공)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창과 방패 거두고, 활과 화살 활집에 넣노라. 나 아름다운 덕을 구하여 이 중원에 베푸나니, 참으로 왕께서 천명을 지키시네.'
선왕들께서는 백성이 덕을 바르게 하여 본성을 도탑게 하도록 힘쓰시고, 필요한 재물을 넉넉하게 해주고 긴요한 기구를 이용하게 하시며, 이로움과 해로움의 방향을 밝혀서 문화로써 닦게 했습니다. 이리하여 백성들이 이로운 일에 힘쓰고 해로움을 피하며, 덕을 품고 천자의 위세를 두려워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대대로 지켜 더욱더 크게 할 수 있었습니다. … 이는 무력에 힘쓰지 않은 것이니, 백성의 고통을 가슴 아파하며 해악을 없앤 것입니다."
이 말은 '國語(국어)'의 '周語 上(주어 상)'에 나온다. 목왕은 주 왕조 초기 군주고, 아직 예악이 무너지기 전에 통치하던 군주다. 그는 지금의 섬서성 일대에 거주하던 오랑캐 견융을 치려 했는데, 이는 왕실의 안정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보는 만류했다. 武力(무력)으로 征伐(정벌)하는 것보다 덕을 드러내어 包容(포용)하는 일이 나라의 존속에 긴요하고 또 장구한 계책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보가 덕만 중시하지 않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덕이 덕으로서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필요한 재물을 넉넉하게 해주고 긴요한 기구를 이용하게 하는" 등 백성들이 살아가는 데 유감이 없도록 해주는 일도 아울러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尙書(상서)'의 '大禹謨(대우모)'에 나오는 "덕을 바로잡고 쓰는 것을 이롭게 하며 생활을 도탑게 해주어 서로 잘 어우러지도록 한다"는 뜻의 "正德利用厚生, 惟和"(정덕이용후생, 유화)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18세기 후반 조선의 북학파가 주장한 '利用厚生(이용후생)'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요컨대 물질적인 문제까지 다루지 않고서는 덕이 덕으로서 구실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覇道(패도)를 부정하고 오로지 王道(왕도)만을 유일한 정치라고 주장했던 맹자조차 "산 사람을 먹여 살리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섭섭함이 없게 하는 것"에서 왕도가 시작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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