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사(亅 -7)있을 유(肉-2)마칠 종(糸-5)처음 시(女-5)
'說苑(설원)'의 '辨物(변물)'에 다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趙簡子(조간자)가 翟(적)나라에서 온 封荼(봉도)에게 물었다.
"적나라에서 사흘 동안 곡식이 비처럼 내렸다고 하던데, 사실이오?"
"사실입니다."
"또 사흘 동안 피가 비처럼 내렸다고 하던데, 사실이오?"
"사실입니다."
"또 말이 소를 낳고 소가 말을 낳았다고 하던데, 그것도 사실이오?"
"사실입니다."
그러자 조간자가 탄식했다.
"대단하구나, 妖邪(요사)한 일이 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로구나!"
이에 봉도가 대답했다.
"곡식이 사흘 동안 비처럼 내린 것은 회오리바람에 날아올랐던 곡식이 내린 것이고, 피가 사흘 동안 비처럼 내린 것은 독수리가 잡아챈 짐승이 하늘에서 흘린 피고, 말이 소를 낳고 소가 말을 낳은 것은 뒤섞어서 기른 탓입니다. 이는 적나라의 요사한 일이 아닙니다."
조간자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적나라의 요사한 일은 무엇이오?"
봉도가 대답했다.
"나라가 자주 흐트러지고, 군주는 어리고 약하며, 여러 卿(경)들은 대부들과 재물로 한통속이 되어 녹봉과 작위를 요구하고, 모든 관리들은 함부로 일을 처리해 놓고 알리지도 않으며, 정령은 끝까지 실행되지 않은 채 자주 바뀌고, 선비들은 간교하게 탐욕부리며 원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것이 적나라의 요사한 일입니다."
殷墟(은허)에서 발굴된 다량의 甲骨文(갑골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商(상) 왕조는 국가의 중대사를 대부분 점을 쳐서 결정했다. 한마디로 占卜(점복)의 왕조로서, 종교적 성향이 아주 강했다. 반면에 周(주) 왕조는 문물과 제도를 새롭게 정비하면서 人文的(인문적) 성격이 강했다. 말하자면, 좀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유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통치자나 귀족들이 모두 오롯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위의 이야기에 나오는 조간자처럼 사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공자가 병이 들자 子路(자로)가 天神(천신)과 地神(지신)에게 기도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論語(논어)' '述而(술이)'편에 나올 정도니, 여느 사람이야 오죽하랴.
사실 봉도처럼 어떤 사태나 사건, 특히 정치적인 문제를 냉철하게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인물은 예나 이제나 드물다. 그런 점에서 '대학'의 '事有終始(사유종시)'는 결코 단순하게 볼 수 없는 구절이다.
고전학자
'정천구의 대학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43> 管仲과 齊桓公 (0) | 2021.06.01 |
---|---|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42> 愼終如始 (0) | 2021.06.01 |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40> 忠信禮之本也 (0) | 2021.06.01 |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39> 儀式과 禮義 (0) | 2021.06.01 |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38> 物有本末 (0) | 2021.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