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47> 水魚之交

bindol 2021. 6. 1. 05:49

- 물 수(水 - 0)물고기 어(魚 - 0)갈 지(丿 - 3)사귈 교( - 4)

 

'삼국지' '諸葛亮傳(제갈량전)'을 보면, 유비는 제갈량을 세 번이나 찾아가서야 비로소 만나는데, 만난 뒤에는 제갈량과 나날이 정이 깊어졌다. 관우와 장비는 이를 마뜩잖게 여겼다. 그러자 유비는 이렇게 해명했다.

"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願諸君勿復言!"(고지유공명, 유어지유수야. 원제군물부언!)

"내가 공명을 만난 것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네. 그대들은 이에 대해 다시는 말하지 말게나!"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水魚之交(수어지교)'다. 군주와 신하 사이가 마치 물고기와 물처럼 각별하고 친밀하다는 뜻이다. 전국시대에도 그런 만남이 있었으니, 바로 秦(진)나라 孝公(효공, 기원전 361∼338 재위)과 公孫鞅(공손앙, ?∼기원전 338)이 그 주인공이다.

공손앙의 출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공손앙이라는 성명으로 그가 公族(공족)의 후손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가 처음 행적을 드러낸 것은 전국시대 魏(위)나라에서다. 위나라에서 그는 相國(상국)이던 公叔座(공숙좌)의 家臣(가신)으로 있었다. 스물이 채 안된 나이에 공숙좌 집안의 일들을 총괄하는 중서자를 맡았으니,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지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공숙좌가 병이 깊어 일어나기 힘들어졌을 때, 魏惠王(위혜왕, 梁惠王이라고도 한다)이 문병하러 와서는 물었다.

"그대가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면, 누구에게 국사를 맡기는 것이 좋겠소?"

공숙좌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의 중서자로 있는 공손앙은 비록 어리지만 재능이 빼어납니다. 그에게 나랏일을 맡기시고, 다스리는 이치를 들으십시오."

혜왕이 이 말을 들을 리 만무하다. 왜냐하면 전혀 존재를 알지 못했던 공손앙을 느닷없이 거론하며 그에게 국사를 맡기라는데, 과연 어떤 군주가 그 말을 듣겠는가? 게다가 스물 안팎의 새파란 젊은이가 아닌가! 이는 애당초 공숙좌의 잘못이다. 공손앙의 재능이 빼어나 국사를 맡게 할 만한 인물임을 확신했다면, 그 자신이 건재할 때 추천했어야 옳다. "새는 죽을 때 그 소리가 슬프고 사람은 죽을 때 그 말이 착하다"는 속담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해도, 갑작스레 사람을 추천하여 믿고 쓰라는 말은 아무리 현명한 군주라도 선뜻 수용할 수 없다. 하물며 어질다거나 현명하다고 말하기에는 손색이 있는 혜왕임에랴!

혜왕이 공손앙을 쓰지 않을 것임을 눈치챈 공숙좌는 공손앙을 기용하지 않겠다면 반드시 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용하라는 말도 듣지 않는데, 죽이라는 말을 듣겠는가?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