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후 공(八 - 2)자손 손(子 - 7)가슴걸이 앙(革- 5)바꿀 변(言 - 16)법 법(水 - 5)
효공으로부터 실망의 꾸지람을 들은 경감이 돌아와서 공손앙에게 왜 헛된 말을 했느냐고 물으니, 공손앙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군주에게 帝道(제도)에 대해 말했는데,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제도란 堯(요)나 舜(순)과 같은 전설상의 聖君(성군)이 나라를 다스린 방도를 이른다. 흔히 道家(도가)에서 말하는 治道(치도)라고 하는데, 이는 태평한 시절에 알맞은 '無爲之治(무위지치)'를 가리킨다. 이런 방도는 난세에는 적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른 부국강병을 이루려 한 효공에게는 부질없는 논의로 들렸을 게 뻔하다.
닷새가 지난 뒤 효공은 다시 공손앙을 불렀고, 공손앙은 王道(왕도)를 이야기했다. 효공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아 시큰둥했다. 제도만큼이나 비현실적인 방책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닷새 뒤, 효공을 다시 만난 공손앙은 이번에는 覇道(패도)를 이야기해주었다. 그러자 효공은 경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빈객은 썩 괜찮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만하오."
효공의 반응이 제도나 왕도를 들을 때보다는 한결 나아졌으나, 패도에도 마음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비로소 효공의 내심을 알아챈 공손앙은 경감에게 다시 효공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번에는 효공이 공손앙 쪽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귀를 기울여 들었다. 공손앙과 며칠 동안 계속 이야기하면서 효공은 전혀 싫증 내지 않았다. 공손앙이 强國(강국)이 되는 길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 요지는 "법령을 바꾸고 형벌을 정비하며, 안으로는 농사에 힘쓰고 밖으로는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사들에 대한 상벌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農戰(농전)과 賞罰(상벌)에 주안점을 둔 變法(변법)이었다.
뛰어난 인재를 얻으려 애썼던 효공, 자신을 절대적으로 신임하며 일을 맡길 군주를 찾던 공손앙. 두 사람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먼저 상대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효공은 공손앙이 진나라를 부강하게 해줄 방책과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했고, 공손앙은 효공이 군주로서 어느 정도의 식견과 성품을 지녔는지 또 참으로 자신의 능력을 믿고 써줄 군주인지 파악해야 했다.
몇 번의 대화를 나누면서 드디어 서로 뜻이 통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냈다. 정확하게는 공손앙이 그 지점을 찾아간 것이다. 어쨌든 효공은 공손앙이 자신의 의중대로 정책을 펴나갈 것임을 확신하자 바로 발탁하여 卿(경)에 해당하는 左庶長(좌서장)이라는 직책을 주었고, 흔들림 없이 그를 신뢰했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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