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46> 知所先後

bindol 2021. 6. 1. 05:46

- 알 지(矢-3)바 소(戶-4)먼저 선(-4)뒤 후(-6)

 

온갖 것에는 뿌리와 우듬지가 있고 온갖 일에는 마침과 처음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앞세우고 무엇을 뒤로 돌리며 또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한 일이라면 모르겠으나, 만약 크고 중요하면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일이라면, 마구잡이로 처리할 수 없다. 자칫했다가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게 되는 수가 종종 있고, 자칫 심각한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그래서 "앞서 할 것과 뒤에 할 것을 잘 알면 길에 가까워진다"는 뜻의 '知所先後則近道矣(지소선후즉근도의)'를 말한 것이다.

'문자'의 '上德(상덕)'에 나온다. "弓先調而後求勁, 馬先順而後求良, 人先信而後求能."(궁선조이후구경, 마선순이후구량, 인선신이후구능.) "활은 먼저 조율한 뒤에 굳셈을 구하고, 말은 먼저 길들이고 난 뒤에 훌륭함을 구하고, 사람은 먼저 미쁘게 된 뒤에 유능함을 구한다."

무릇 일에는 순서가 있다. 일이란 시간의 흐름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할 것을 뒤에 하거나 나중에 할 것을 먼저 할 수 없다. 특히 두세 가지 이상을 동시에 처리할 수도 없다. 누군가가 "나는 한꺼번에 여러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더라도 그것은 착각이다. 성서의 첫머리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조차 하늘과 땅, 만물을 한꺼번에 창조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엿새 동안 차근차근 창조했다. 하물며 사람이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동시에 잘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過信(과신)이고 그렇게 하려는 것은 過慾(과욕)이다.

'문자'에서 말하고 있듯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강하고 정확하게 화살을 쏘아야 하지만 반드시 먼저 활을 조율해 놓아야 한다. 천리마를 얻었더라도 먼저 길들이지 않으면 말의 훌륭한 자질을 꺼내 쓸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능력 있는 사람, 뛰어난 사람을 얻고 싶다면, 먼저 그가 나를 믿게 해야 한다. 나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가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가졌더라도 나를 위해 쓰지 않는다.

이처럼 무슨 일에서나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먼저 해야 할 것을 먼저 해야만 그에 따라 마땅한 또는 좋은 결과가 뒤따른다.

가령, 부국강병을 이루고 태평성세를 구가하려면 어진 군주와 유능한 신하가 만나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군주 자신이 먼저 어진 마음과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야 유능한 신하를 얻고, 마찬가지로 선비는 그 자신이 먼저 남다른 능력과 빼어난 덕성을 갖추고 있어야 어진 군주에게 발탁된다는 사실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