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55> 離間

bindol 2021. 6. 1. 06:23

떨어질 리(-11) 사이 간(門-4)

 

기원전 660년, 재위 17년째 되던 해에 晋獻公(진헌공)은 태자 申生(신생)에게 군대를 주어 東山(동산)을 정벌하게 했다. 그러자 대신 里克(이극)이 간언했다.

"군주께서 出行(출행)하시면 태자는 머물러서 나라를 살핍니다. 군주께서 출행하실 때 태자가 따라가는 것은 군주를 도와 군사들을 慰撫(위무)하기 위해섭니다. 지금 군주께서 머물러 계시고 태자가 출행하도록 하니, 이런 예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헌공은 아주 불쾌하게 여기며 말했다.

"이는 그대가 알 바 아니오. 태자를 세우는 데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소. 덕이 같으면 나이가 많은 이를, 나이가 같으면 사랑받는 이를, 사랑받는 게 같으면 점을 쳐서 가린다고 했소. 그대는 아비와 자식 사이에 끼어들어 이간질하지 마시오! 내 태자를 출병시켜 살펴볼 것이오!"

헌공은 이극에게 아비와 자식 사이에서 이간질하지 말라고 했지만, 태자인 자식을 멀찌감치 내친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럼에도 여희와 그 아들 해제를 총애하는 마음에 가려 忠言(충언)과 이간질을 구분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紛亂(분란)의 빌미가 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극은 헌공의 대답에서 이미 태자를 廢位(폐위)하려는 뜻이 정해져 있음을 알아챘다. 그러나 그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태자 신생은 마침내 동산을 정벌하고 돌아왔는데, 태자를 헐뜯는 말만 더욱 많아졌다. 헌공이 내심으로 태자를 꺼린다는 사실을 간파한 소인배들이 弄奸(농간)을 부린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태자는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고자 애썼다. 한편, 사태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확신한 여희는 드디어 일을 꾸몄다. 태자가 동산을 정벌한 지 5년이 지났을 때다. 여희가 헌공에게 이렇게 헐뜯었다.

"제가 들으니, 신생이 군주를 해치려는 계략을 더 치밀하게 꾸미고 있다 합니다. 지난날에 저는 신생이 民心(민심)을 얻었다고 군주께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신생은 민심을 얻어 이를 믿고 강한 세력을 이루었으며 또 簒奪(찬탈)의 계획을 백성들에게 흘리고 있다 합니다. 이렇게 되면, 태자가 물러서려고 하더라도 백성들이 따질 것이 분명합니다.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백성들의 마음도 누를 길이 없으니, 이 때문에 더 치밀하게 계략을 꾸미고 있습니다. 군주께서 먼저 일을 꾀하지 않으신다면, 患亂(환란)이 닥칠 것입니다."

헌공이 대답했다.

"나도 잊지 않고 있소. 다만 벌을 내릴 만한 꼬투리를 아직 잡지 못했소."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