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53> 八條目

bindol 2021. 6. 1. 06:18

여덟 팔(八-0) 가지 조(木-7) 눈 목(目-0)

 

2-1을 이렇게 나타낼 수 있다. "평천하(平天下)←치국(治國)←제가(齊家)←수신(修身)←정심(正心)←성의(誠意)←치지(致知)←격물(格物)."

이를 흔히 '대학의 八條目(팔조목)'이라 한다. 그런데 반드시 이 순서대로 마음공부나 몸가짐, 행위 따위가 이루어진다고 여겨서는 곤란하다. 순서를 말한 것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 것일 뿐, 이 순서가 절대적은 아니다. 만약 순서대로 해야 한다면, 왕실에서 태어나 어려서 태자로 책봉되더라도 수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이래서는 왕위를 이을 자가 거의 없을 것이다. 군주가 아니더라도 선비가 되어 학문을 해서 세상에 뜻을 펴려는 사람도 이 순서를 지켜야 한다면, 아마 대부분이 집 밖으로 나서지도 못할 것이다. 집 밖은 제쳐두고 글방에서조차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여덟 가지는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평천하 안에 치국이 있고, 치국 안에 제가가 있으며, 제가 안에 수신이 있다. 마찬가지로 수신 안에 정심이 있고, 정심 안에 성의가 있으며, 성의 안에 치지가 있고, 치지 안에 격물이 있다. 이를테면, 가장 안쪽에 격물이라는 원이 있고, 그 원 밖에 치지라는 원이 있으며, 이렇게 점점 큰 원이 형성되어 가장 바깥에 평천하라는 원이 있는, 일종의 동심원을 이루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가령, 격물이 제대로 되었는지, 치지가 되었는지, 성의가 되었는지 또는 정심이 되었는지를 그 자체로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의 말과 행동을 살펴보고 제가를 하거나 치국을 하거나 평천하를 어떻게 하는지 보아야 비로소 알 수 있다. 그리고 삶 속에서 갖가지 일들을 맡아 하는 경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격물도, 치지도, 성의도, 정심도 오롯해지지 않는다. 그런 경험을 도외시하는 것은 관념적으로 덕을 쌓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자칫 제가와 치국, 평천하를 그르치거나 위태롭게 한다. 따라서 격물, 치지, 성의, 정심 따위는 제가와 치국, 평천하와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후대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늘 언급하듯 '대학'의 이 구절도 초점이 여기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성리학자들의 사유와 인식은 수양을 강조하는데 있었으므로 '치국평천하'가 유가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놓쳐버렸다. 성리학에서 '대학'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수양이라는 관점에서 '대학'을 이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대학'을 정치의 요체를 담은 책으로 본다면, 이런 편협한 시각 또는 그릇된 관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