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진(日-6) 바칠 헌(犬-16) 제후 공(八-2)
춘추시대에 주 왕실이 유명무실해지자 제후들은 서로 覇權(패권)을 차지하여 천하를 호령하려 했다. 그러나 패권을 차지한 제후는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순자'에 따르면, 제나라 환공, 晉(진)나라 文公(문공), 楚(초)나라 莊王(장왕), 吳(오)나라 闔閭(합려), 越(월)나라 구천(句踐) 등이 고작이다. 패권을 차지하여 패자가 되는 일이 실로 어려웠음을 뜻한다. 설령 패자가 되었더라도 당사자들이 죽은 뒤에는 패권을 잃었고, 심지어는 나라가 혼란에 휩싸이거나 쇠망의 길로 접어들기도 했다. 平天下(평천하)는 제쳐두고라도 治國(치국)조차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 까닭은 평천하나 치국에만 마음을 두고, 평천하나 치국에 앞서 해야 할 일을 몰랐거나 간과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평천하나 치국보다 사욕이나 야욕을 채우기에 급급했다면?
기원전 672년, 晉(진)나라 獻公(헌공)은 驪戎(여융)을 쳐서 승리하여 여융의 군주를 죽이고는 그 두 딸을 얻어 돌아왔다. 적국의 군주를 죽이고 그 딸을 얻는 일은 불길한 일이었으므로 신하들이 극구 말렸다. 그러나 헌공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오히려 驪姬(여희, 여융 출신의 여인이라는 뜻)와 그 여동생을 총애했다. 이윽고 여희는 奚齊(해제)를 낳았고, 여희의 여동생도 卓子(탁자)를 낳았다. 헌공에게는 이미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서 태자 申生(신생)과 공자 重耳(중이), 공자 夷吾(이오)는 현명하고 선량하여 헌공이 아꼈다. 그런데 해제가 태어나자 헌공은 태자를 폐할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曲沃(곡옥)은 우리 선조의 묘소가 있는 곳이고, 蒲邑(포읍)은 秦(진)나라와 가깝고, 屈邑(굴읍)은 翟(적, 북방 오랑캐)과 가깝다. 만약 아들들을 보내 그곳을 지키게 하지 않는다면, 난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신생은 곡옥에, 중이는 포읍에, 이오는 굴읍에 보내 각각 머물게 했다. 헌공은 여희의 아들 해제는 도성에 머물게 하여 자신 가까이에 두었다. 이쯤 되자 여희는 태자 신생을 내쫓고 해제를 태자로 세우고 싶어졌다. 당연하다. 젊고 아름다운 것으로 총애를 받고 있으니, 나이가 들고 미색이 사그라지면 버림받을 게 뻔하다. 그러나 자식이 태자가 되고 왕위를 잇는다면, 그런 걱정이나 두려움은 없어진다. 무엇보다도 여희로서는 부친의 원수를 갚아야 하는 처지에 있다. 해제가 왕위에 오른다면 진나라를 얻게 될 터이니, 이야말로 절묘한 복수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여희의 속셈과 禍亂(화란)의 조짐을 진나라 대신들이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이미 헌공의 마음이 여희에게 있으니, 어떠한 말을 해도 들을 리 없었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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