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수(水-0)곧 즉(刂-7)실을 재(車-6)배 주(舟-0)엎을 복(-12)
'순자' '王制(왕제)'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君者, 舟也; 庶人者, 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군자, 주야; 서인자, 수야. 수즉재주, 수즉복주.)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싣기도 하지만, 물은 배를 뒤엎기도 한다"는 뜻이다. '관자' '牧民(목민)'에 나온다.
"무릇 영지를 가지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네 계절의 순환을 살펴서 곡식 창고가 넉넉해지도록 해야 한다. 나라에 재물이 많으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오고, 땅이 개간되어 넓어지면 백성이 머물러 살며, 곡식 창고가 가득 차면 예절을 알게 되고, 의복과 식량이 넉넉해지면 영예와 치욕을 알게 되며, 위에서 법도를 잘 지키면 六親(육친)의 사이가 도타와지고, 禮義廉恥(예의염치)를 널리 펴면 군주의 명령이 잘 실행된다. 그러므로 형벌을 줄이는 요체는 사치스럽게 꾸미는 것을 금지하는 일이고, 나라를 지키는 법도는 예의염치를 닦는 데 있으며, 백성을 따르게 하는 벼리는 귀신을 잘 살피고 산천의 신을 받들며 종묘의 신을 공경하고 조상의 뜻을 공손하게 받드는 것이다."
아무리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더라도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되어야 비로소 귀를 기울이고 잘 지킨다. 굶주림에 허덕이고 추위에 벌벌 떠는 백성에게 예의와 염치를 차리라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무례요 폭언이며 폭정이다. 형벌을 혹독하게 적용한다고 해서 등을 돌린 민심이 돌아서는 일은 없다. 그 점을 간과했다가 반란에 직면했던 왕조가 한둘이던가?
흔히 진시황의 통일 제국이 오로지 가혹한 형벌로 백성을 다스리다가 무너졌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오산이고 왜곡이다. 秦(진) 제국이 엄정한 법률과 상벌을 시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정한 잣대 없이 무자비하게 형벌을 집행하지는 않았다.
전국시대에 들어서 진나라는 商鞅(상앙)의 變法(변법)에 따라 황무지를 개간하는 백성에게 10년간 징세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온 백성에게는 3대까지 부세와 요역을 면제해주는 등 적극적인 증산 정책을 시행하였다. 또 상벌을 공평하게 집행하며 백성들이 법령을 준수하도록 관리들을 엄격하게 잡도리하고, 늘 전쟁을 염두에 두고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등 부국강병을 위한 제반 정책을 착실하게 실시하였다. 이런 정책을 진시황에 이르기까지 백여 년 동안 지속한 결과, 10여년 만에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다. 진시황의 천하 통일은 전례가 없던 대업이었다. 그런 대업이 어찌 형벌을 가혹하게 집행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겠는가. 語不成說(어불성설)이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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