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98> 不偏不黨

bindol 2021. 6. 3. 04:35

- 아닐 불(一-3)치우칠 편(人-9)기울어질 당(黑-8)

 

안영은 죄인의 몸이 된 월석보를 보자마자 기꺼이 贖錢(속전)을 내고 풀려나게 했으며, 곧바로 자신의 집으로 모셨다. 또 대부분의 남자가 허투루 듣고 넘어가거나 때로 듣고서 기분 나쁘게 여기는 아내의 말을 깊이 새겨듣고 행동거지를 바꾼 마부의 마음 씀씀이를 높이 평가하여 대부로 삼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 모두 그 자신이 군자이거나 현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다. 자신이 소인배였다면, 결코 죄인의 몸으로 있는 사람에게서 현자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고, 하찮은 마부를 대부로 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안영은 마부를 대부로 삼았을까?

마부는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내였다. 남의 말을 들을 줄 안다는 것은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잘 알아듣고 또 상대의 意中(의중)을 읽을 줄 안다는 뜻이며, 동시에 자신을 돌아볼 줄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돌아볼 줄 알기 때문에 아내의 말에 따라 자신을 잡도리할 수 있었다. 무릇 공부를 하거나 訟事(송사)를 처리하거나 정책을 결정하는 일 모두 들을 줄 아는 데서 시작된다. 들을 줄 안다는 것은 옳은지 그른지, 타당한지 부당한지, 유익한지 무익한지 따위를 제대로 판단할 줄 안다는 뜻이며, 나아가 올바로 실행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영은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이, 상대의 신분이나 처지가 어떠하든 그 사람을 不偏不黨(불편부당)하게 보고 제대로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을 볼 줄 아는 식견을 갖추었다고 할 만하다.

이런 사람이 어찌 현자가 아니겠는가! 그러했으므로 內亂(내란)과 內紛(내분)으로 혼탁한 시기에 음란하거나 모자란 군주 세 명을 모시면서도 그 자신이 건재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제나라가 기울어지지 않도록 떠받칠 수 있었던 것이다.(<34> '南橘北枳'도 보라)

사마천은 안영의 전기를 쓰고 난 뒤에 이렇게 말했다.

"안자는 제나라 장공이 최저에게 죽임을 당하고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있을 때 그 주검에 나아가 엎드려 곡을 했고, 신하의 예의를 다한 뒤에 떠났다. 이를 어찌 정의를 보고도 실천하지 않는 '용기 없는 행동'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간언을 해야 할 때에는 군주의 낯빛을 거스르면서도 흔들림이 없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나아가면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면 허물을 고칠 것을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오늘날 안자가 살아 있다면, 나는 그를 위해 기꺼이 채찍을 잡을 만큼 깊이 흠모한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