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05> 假道滅虢

bindol 2021. 6. 3. 04:55

- 빌릴 가(人-9)길 도(辵-9)없앨 멸(水-10)나라이름 괵(-9)

 

궁지기가 진나라에 길을 빌려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간언하자, 우공은 이렇게 말했다.

"진나라는 우리와 같은 종족인데, 어찌 우리를 해치겠소?"

궁지기가 대답했다. "太伯(태백)과 虞仲(우중)은 모두 太王(태왕, 周 왕조의 선조)의 아들이었습니다. 태백은 부왕의 뜻을 따르지 않고 막내 王季(왕계)에게 물려주고 뒤를 잇지 않았습니다. 虢仲(괵중)과 虢叔(괵숙)은 모두 왕계의 아들이었습니다. 이들 모두 文王(문왕)의 卿士(경사)가 되어 왕실에 공훈을 세웠는데, 그 문서가 盟府(맹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진나라가 그들과 가까운 괵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는데, 하물며 우리 우나라를 아끼겠습니까? 또 헌공이 우나라를 가까이한들 桓叔(환숙, 헌공의 증조부)과 莊伯(장백, 헌공의 조부)의 자손보다 더 가까이하겠습니까? 환숙과 장백의 자손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그들을 살육했겠습니까? 그들의 세력이 커져 헌공을 핍박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친족이어서 사랑할 만한데도, 핍박을 받자 오히려 해쳤습니다. 하물며 나라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서는 어떠하겠습니까?"

우공이 말했다. "내가 올리는 제물은 풍성하고 깨끗하니, 신이 틀림없이 나를 지켜줄 것이오."

궁지기가 대답했다. "제가 듣기에 '귀신은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덕을 따른다'고 했습니다. '상서'의 '周書(주서)'에서는 '하늘은 따로 가까이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로지 덕 있는 자를 돕는다'고 했고 또 '黍稷(서직, 신에게 올리는 곡식)이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밝은 덕이 향기롭다'고 했으며, 또 '백성의 제물은 다르지 않으나, 오로지 덕 있는 사람의 제물만 흠향한다'고 했습니다. 이로써 보면, 덕이 없으면 백성은 화합하지 않고 신은 흠향하지 않습니다. 신을 믿고 기댈 수 있느냐는 덕에 달렸습니다. 만약 진나라가 우나라를 차지한 뒤에 덕을 밝혀서 향기로운 제물을 바친다면, 신이 그것을 게워내겠습니까?"

그러나 우공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진나라 사자에게 길을 빌려주겠다고 허락했다. 궁지기는 자기 일족을 이끌고 떠나면서 말했다.

"우나라는 올해 臘祭(납제, 세밑에 지내는 제사)를 지내지 못할 것이다. 진나라는 괵나라를 친 뒤에 곧바로 우나라를 칠 것이니, 다시 거병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해 8월에 진나라는 괵나라를 공격했고, 12월에 괵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회군하는 길에 우나라를 공격하여 우나라까지 멸망시켰다. 이것이 이른바 '假道滅虢(가도멸괵)'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