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라질 변(言-16)덕 덕(彳-12)
춘신군이 순경(순자)을 난릉의 현령으로 삼은 뒤에 어떤 유세객이 춘신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은나라의 탕왕은 亳(박)을, 주나라의 무왕은 鄗(호)를 도읍으로 삼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두 나라 모두 사방 100리도 안 되는 작은 나라였으나, 마침내 천하를 차지했습니다. 이제 순경은 천하의 현인으로, 큰일을 도모할 만한 인물입니다. 만일 그대가 그에게 100리의 땅을 내려 밑천으로 삼게 한다면 그것은 그대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 나는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춘신군은 "옳은 말이오!"라고 대답하고는 곧바로 사람을 보내 순경에게 절교한다고 알렸다. 참으로 무례하고 어리석은 처사다. 남의 말만 듣고 제 스스로 받아들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해버렸으니, 무례하다. 유세객의 말이 과연 옳은지 그른지, 담긴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았으니, 어리석다.
그가 애초에 왜 순경을 받아들였던가? 현명하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닌가? 그 현명함을 자신과 초나라를 위해 활용하려고 순경을 받아들였던 것이 아닌가? 아닌 모양이다. 자신 가까이에 두지 않고 지방관의 자리에 앉힌 것으로 보아서 그렇다. 이는 사람을 알아볼 줄도 몰랐고 쓸 줄도 몰랐다는 뜻이다. 아마도 현자를 얻어서 자신 아래에 두었다는 명성을 얻는 데에만 마음을 썼던 듯하다.
당시 최고의 학자로서 자신의 학문을 현실 정치에서 쓰고자 했던 순경이지만,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이에게 굳이 붙어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는 현자가 아닌가? 무례하고 어리석은 자에게 달리 무슨 말을 하겠는가?
순경은 난릉을 떠나 조나라로 갔고, 조나라에서는 그를 上卿(상경)으로 삼았다. 그러자 다른 유세객이 또 춘신군에게 말했다.
"옛날 伊尹(이윤)이 夏(하)나라를 떠나 殷(은)나라로 들어가자 은나라가 천하를 차지하고 하나라는 망했습니다. 관중이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들어가자 노나라는 약해지고 제나라는 강해졌습니다. 무릇 현자가 있는 곳에서는 그 군주가 높아지지 않은 적이 없고 그 나라가 번영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저 순경은 천하의 현인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떠나보냈습니까?"
춘신군은 다시 "옳은 말이오!"라고 대답하고는 사람을 보내 조나라에서 순경을 맞이하려 했다. 스스로 명덕이나 준덕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이렇게 주위의 말에 좌지우지된 것이다. 變德(변덕)을 부린 것인데, 이런 변덕은 無德(무덕)보다 못하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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