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16> 스물과 스몰 : 20세 때

bindol 2021. 6. 3. 09:40

잘 쓰이지 않는 숫자로 ‘卄’이라는 한자가 있다. 스물 입 자다. 일십의 두 배인 이십을 ‘입’이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같다. 열 십(十)을 나란히 배치했다. 로마 숫자로 십은 ‘Ⅹ’인데 이십을 ‘ⅩⅩ’으로 쓰는 것과 똑같다. 가장 보편적 진법(進法)인 십진법에서 ‘十’은 꽉 찬 숫자인데 그 배인 ‘卄’은 곱빼기로 꽉 차있으니 더욱 완전한 숫자다. 그래서 우리는 스무 고개를 넘듯이 20개 질문을 던지면서 범위를 좁히고 초점을 맞추어 문제를 맞혔나 보다.

19 다음의 20인 입(卄)은 두 배로 꽉 차 있는 숫자처럼 들린다. 19금(禁) 제한도 꽉찰 만(滿)19세인 20세가 되면 풀린다. 20세 청춘은 청춘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청춘이다. 청춘 예찬은 20세 젊음에 대한 예찬이기 쉽다. 19세까지의 청춘이 덜 익은 풋풋한 연(軟)녹색 청춘이라면 20세부터의 청춘은 무르익은 진(津)녹색 청춘이다. 대개의 스포츠 기량은 20대에 절정을 이룬다. 전세계 대중음악은 온통 20대의 장이다. 20대는 남녀 모두 가장 강건하며 왕성한 나이다. 그 만큼 20은 완전한 숫자다.

그런데 20을 순우리말인 스물이라고 하면 어쩐지 느낌이 달라진다. 이십이 딱딱한 숫자로 들린다면 스물은 정다운 문자로 들린다. 왕년에 모 통신회사의 광고문구에서 ‘스무살의 TTL’이라고 했었는데 이를 ‘이십세의 TTL’이라고 하면 광고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야릇한 느낌이 살지 않았을 것이다.

‘스무살’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20세’라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의 20년’이라는 가요가 있었는데 제목만으로는 느낌이 단언적이다. 가사에는 “커피를 알았고 낭만을 잡았던 스무살 시절에 나는 사랑했네…”라고 했으니 제목을 ‘스무살 인생’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스물, 스무살! 20, 20세로는 형언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을 주는 단어다. 그 미묘한 느낌은 스물이라는 낱말이 주는 특별한 감정 내지는 의미에서 오는 듯하다.

이십이 열보다 두 배나 성숙한 숫자라면 똑같은 뜻의 스물은 앞으로 전개될 숫자들에 비하여 부족한 숫자다. 그래서 20세는 어른이 되는 성숙한 나이지만 스물은 어린 어른(young adult)으로 아직은 미숙한 나이다. 당장 우리 자신의 스무살 때를 상기하면 수긍이 간다. 거의 누구나 나이 들수록 스무살 청춘은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또 돌아가고 싶지않은 고난의 시기다. 고난의 스물(smool) 때는 20년 인생 살아온 범위에서 아직은 생각이 스몰(small)할 때다. 물론 그 만큼 가능성은 더욱 넓게 열려 있다. 이제 어느 가능한 길로 들어서서 나이가 들면서 작았던 생각이 커지고 여물어간다. 40세는 두 번째 스물이고 60세는 세 번째 스물이라는 말처럼 스물은 스몰하지만 가장 아이디얼한 때다. 비록 고난의 시기이지만 삶에서 이상적 기준이 되는 스물인 것이다. 이 스무살 때를 잘 견디며 헤쳐 가려면 아무쪼록 방향을 잘 잡아야 하겠다. 이 인문생태학 칼럼도 큰 방향잡이가 되길 바란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