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모세는 BC 13세기에 ‘모세5경’을,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는 BC 5세기에 ‘히스토리아’를, 한나라 때 사마천은 BC 1세기에 ‘사기’를 썼다. 이보다 1000~2000여 년 늦은 1145년에 고려의 김부식은 우리나라 최초 역사서인 ‘삼국사기’를 편찬했다. 여기에 백제라는 나라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기록돼 있다. 원래는 열 명의 신하(十臣)가 보좌하여 십제(十濟)라 했는데 나중에 백성(百姓)들이 더 많이 따라와서 백제(百濟)로 바꾸었단다. 아무리 삼국사기가 정사라고 하지만 궁금한 게 있다. 과연 백제라는 국명을 당시에 그렇게 한자로 지었을까.
고구려 시조인 주몽의 아들 온조가 왕권 싸움을 피해 한강 남쪽(河南) 유역으로 내려와 백제를 건국한 때는 BC 18년이다. 1163년 후 삼국사기가 편찬된 1145년에는 고려의 귀족들이 쓰는 한자가 완전히 정착되었지만 온조가 백제를 건국할 당시에는 한자가 한나라로부터 유입되는 중이었다. 당연히 한자가 많이 사용되지 않을 때다. 한자를 가장 빨리 받아들인 고구려라는 이름도 성(城)이나 마을을 뜻하는 구려라는 토속어 앞에 고라는 성씨를 합쳐 지은 것이다. 신라(新羅)라는 한자 이름도 한자가 정착된 503년에야 지어졌으며 그 이전에는 사라, 서라벌 등의 토속어로 불렸다. 백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자가 정착된 이후 지어진 이름 같다. 건국 당시에는 백제를 뜻하는 토속어로 불리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백제를 뜻하는 토속어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백을 뜻하는 토속어가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바로 온이다. 이 온을 쓰는 낱말인 ‘온갖’은 100가지란 뜻이다. 온누리, 온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온이 있는 온조와 백제라는 이름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을 듯하다.
따뜻한 임금이라는 뜻의 온조(溫祚)는 나중에 한자를 빌려 지은 이름이겠다. 온조에서 온도 100을 뜻하는 거 같다. 온조가 세워서 백제일까. 백제를 세워서 온조일까. 당시에 씌어진 역사책이 없기에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힘들다. 다만 백제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는 백에 해당하는 토속어로 온을 썼을 가능성이 크다. 한강 남쪽 나루터에 백여 개의 모든 온 마을이 백제이지 않았을까.
벌집 안에 100여 개의 집을 가진 모양에서 유래했다는 한자인 백(百)은 모든 종류를 전부 망라하는 최대치 숫자였다. 열도 큰 수인데 열의 열 배인 백은 얼마나 큰 수였겠는가. 숫자 폭발은 바로 백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백 가지 성을 가진 백성(百姓)은 모든 국민이다. 100%는 모든 것이 완전히 담긴 비율이다.
100점은 최고 점수다. 백제도 한자로 참 잘 지은 완전한 국명이다. 이름 만으로는 삼국 중 최고다. 100개나 되는 마을이 서로 잘 살아가면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그러나 삼국 중에서 가장 늦게 건국된 백제는 가장 빨리 멸망했다. 100의 뜻을 다 모두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서였을까. 정녕 백(百)다운 백제였다면 어땠을까.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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