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27> 女未知天命

bindol 2021. 6. 4. 05:28

너 여(女-0)아닐 미(木-1)알 지(矢-3)하늘 천(大-1)명령 명(口-5)

 

周(주)나라의 시조는 后稷(후직)이다. 신화 속의 인물이고, 실존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주나라가 그만큼 오래된 나라임을, 오래도록 군림하고 있던 商(상) 왕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갑작스레 일으킨 나라가 아님을 뜻한다. 武王(무왕)이 즉위하여 9년 만에 폭군 紂王(주왕)을 죽이고 상 왕조를 멸망시켰으나, 그 과업은 이미 文王(문왕) 때부터 진행되었던 것이다. 문왕은 50여 년 동안 재위하면서 제후들에게 믿음을 얻고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정치를 하여 중원의 서쪽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했다. 그리하여 '西伯(서백)'으로 일컬어졌다.

그러나 문왕이 서백으로 일컬어지기는 했어도 그 위세가 천하의 주인을 바꿀 만큼은 되지 못했다. 그 아들 무왕이 제후들의 신뢰를 얻어 마침내 군사를 일으켰을 때, 그 무리는 4만5000명이었다고 한다. 반면에 폭군 주왕의 군사는 70만이나 되어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격차가 컸다. 이는 상 왕조의 기반이 그만큼 탄탄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주나라가 승리한 데에는 주왕의 포악한 정치에 민심이 떠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기' '周本紀(주본기)'에서는 "주왕의 군대는 수가 많았지만 하나같이 싸울 마음이 없었다. 무왕이 빨리 공격해 오기를 바라고 있던 터라 주왕의 군사들은 무기를 거꾸로 돌리고 무왕에게 길을 터주었다"고 적고 있다. 물론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민심이 얼마나 떠나 있었는지를 이렇게 묘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주나라가 상 왕조를 멸망시킬 수 있었던 것은 문왕과 무왕이 제후들과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특히 백성의 마음을 얻은 것이 주효했다. 백성의 마음에 하늘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믿었다. 앞서 무왕이 즉위 2년째 되는 해에 군사를 일으켰을 때, 그를 따르던 제후가 800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무왕은 정벌을 멈추었다. 제후들이 모두 "주왕을 정벌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음에도 무왕은 "女未知天命"(여미지천명) 곧 "그대들은 아직 천명을 모른다!"고 하면서 군사를 되돌렸다.

무왕이 군사를 되돌린 것은 천명이 아직 주왕에게 있고 자신에게 있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민심이 여전히 주왕과 상 왕조를 떠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아무리 폭군이 통치를 하더라도 곧바로 민심이 돌아서고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이는 역사가 증명해주는 사실이다. 만약 폭군이 나올 때마다 나라가 망했다면,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왕조가 흥하고 망했을 것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