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37> 夫人不言, 言必有中

bindol 2021. 6. 4. 05:46

저 부(大-1)사람 인(人-0)아닐 불(一-3)말할 언(言-0)
반드시 필(心-1)있을 유(月-2)알맞을 중(-3)

 

진시황은 막강한 군사력과 절묘한 외교력으로 천하를 통일하여 최초의 황제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위업은 그 선조인 秦孝公(진효공)이 商鞅(상앙)을 기용하여 전적으로 신뢰한 데서 비롯되었다. 상앙은 變法(변법)을 시행했는데, 변법은 시대의 변화에 맞게 개정한 법령이었다. 귀족이라도 공을 세우지 않으면 여지없이 작위와 봉토가 깎일 뿐만 아니라 죄를 지으면 가차 없이 형벌을 집행하였다. 대대로 특권을 누리던 귀족들이 반발했을 뿐만 아니라 백성도 불편해했다.

워낙 법령을 엄격하게 집행하자 귀족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원망하는 소리가 대단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자가 법을 어기는 일이 생겼다. 상앙이 말했다. "법이 잘 시행되지 않는 것은 위에서부터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군주께서 법을 반드시 시행하고자 하신다면, 태자부터 먼저 지키게 하십시오. 태자에게 벌을 내릴 수는 없으니, 그 사부가 대신 받게 하십시오."

그래서 태자의 太傅(태부)로 있던 공자 虔(건)의 목을 베고 太師(태사)인 公孫賈(공손고)의 이마에 글자를 새기는 형벌을 내렸다. 이윽고 기원전 338년, 효공이 죽자 태자가 즉위했다. 그가 惠文王(혜문왕)이다. 혜문왕이 즉위하자 상앙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귀족들이 상앙을 모함했다. 궁지에 몰린 상앙은 도망쳤다가 결국 잡혀서 반역죄로 車裂刑(거열형, 사지와 머리를 다섯 대 수레에 묶어 찢어 죽이는 형벌)을 받았다.

혜문왕도 상앙이 반역죄를 저지를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사람인지라 자신의 허물로 말미암아 스승들이 형벌을 받은 일 때문에 오래도록 상앙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귀족들도 그 점을 잘 알고 모함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런데 혜문왕은 상앙을 죽였음에도 그가 시행한 변법은 그대로 두었다. 공과 사를 분명하게 구분했던 것이다. 상앙에게 품은 원한은 사사로운 것이고,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변법은 공적으로 시행된 것이다. 그러나 혜문왕처럼 공과 사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논어' '先進(선진)'편에 나온다. "魯人爲長府, 閔子騫曰: '仍舊貫, 如之何? 何必改作?' 子曰: '夫人不言, 言必有中.'"(노인위장부, 민자건왈: '잉구관, 여지하? 하필개작?' 자왈: '부인불언, 언필유중.') 노나라 관리가 장부에 손을 대려 하자, 민자건이 말했다. "옛것을 그대로 둔들 어떠하겠소? 어찌 꼭 고치려 하시오?"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쉽사리 말하지 않으나, 말을 하면 반드시 알맞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