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39> 自拔其本

bindol 2021. 6. 4. 05:48

스스로 자(自-0)뽑을 발(手-5)그 기(八-6)뿌리 본(木-1)

 

머물러야 할 곳에 머물기 위해서는 먼저 形勢(형세)를 잘 알아야 한다. 형세란 시세의 변화에 따라 전개되는 상황이나 형편을 뜻한다. 형세는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알기 어려우나, 이를 알지 못하면 아무리 머물기 좋은 곳에서도 위험에 빠질 수 있고 환란을 겪을 수 있다. 형세로 말미암아 바뀌지 않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형세를 아는 것이 지혜다. 그리고 지혜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울 때 비로소 깃든다.

기원전 655년, 晉(진)나라가 虢(괵)나라를 칠 때 虞(우)나라에 길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이른바 假道滅虢(가도멸괵)의 계략이다. 그때 宮之奇(궁지기)는 虞公(우공)에게 길을 빌려주지 말라고 간언했으나, 우공은 듣지 않았다. 이에 궁지기가 집으로 돌아와서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虞將亡矣! 唯忠信者能留外寇而不害. 除闇以應外謂之忠, 定身以行謂之信. 今君施其所惡於人, 闇不除矣; 以賄滅親, 身不定矣. 夫國非忠不立, 非信不固. 旣不忠信, 而留外寇, 寇知其釁而歸圖焉. 已自拔其本矣, 何以能久? 吾不去, 懼及焉!"(우장망의! 유충신자능류외구이불해. 제암이응외위지충, 정신이행위지신. 금군시기소오어인, 암부제의; 이회멸친, 신부정의. 부국비충불립, 비신불고. 기불충신, 이류외구, 구지기흔이귀도언. 이자발기본의, 하이능구? 오불거, 구급언!)

"우나라는 곧 망할 것이다! 참되고 미쁜 사람만이 외국의 군대가 머물고 있어도 해를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어리석음을 버리고 외적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을 참됨이라 한다. 자신을 안정시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미쁨이라 한다. 이제 군주는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하려고 하는데, 이는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진나라의 뇌물에 눈이 멀어 가까운 이웃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는데, 이는 자신을 불안정하게 하는 짓이다. 무릇 나라는 참되지 않으면 바로 서지 못하고, 미쁘지 않으면 굳건하지 못하다. 이미 참되지도 미쁘지도 않은데 외국 군대를 머물게 하면, 외국 군대는 빈틈을 알아채고 (괵나라를 멸망시키고) 철군하면서 일을 꾀할 것이다. 스스로 나라의 근본을 뽑아 버렸으니, 어찌 오래 이어갈 수 있겠느냐? 이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가 재앙을 입을까 두렵구나!"

궁지기는 처자식을 데리고 서쪽으로 떠났다. 3월에 우나라는 진나라에 멸망당했다.

궁지기는 괵나라와 우나라의 형세를 잘 알고 진나라의 속셈도 간파했으니, 참으로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군주가 어리석게도 뇌물에 눈이 멀어 어리석은 선택을 하려 하자 강력하게 간언했으니, 참되고 미쁜 신하였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