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손(子-7)아재비 숙(又-6)놀 오(攴-7)
군자는 士人(사인) 이상의 지배층 사람들을 이르고, 소인은 생산에 종사하는 백성들을 이른다. 사마천은 군자라도 재물이 있어야 덕을 즐겨 실천한다고 했다. 이는 재물이 없으면 군자라도 덕을 실천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뜻이고, 실제 그러했다. 하물며 백성은 재물이 없을 때 어떠하겠는가?
그런데 예치와 법치는 참으로 다른 것인가? 역사적으로 예치는 공자와 순자가 강조한 다스림이다. 반면, 법치는 상앙과 한비가 주장한 통치 체제다. 사상의 유파가 다르므로 당연히 예치와 법치 또한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군주의 통치술이 덕성에 바탕을 두느냐, 법률과 형벌에 바탕을 두느냐에서, 또 백성의 본성을 착하다고 보느냐 나쁘다고 보느냐에서 두 학파의 차이는 두드러진다. 그렇기는 하지만, 백성들을 살리는 정치를 우선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사마천은 '사기'에 <循吏列傳(순리열전)>을 두었다. 순리는 공명정대하게 법을 집행하여 선량한 백성은 보호하고 간악한 짓은 반드시 응징하는 관리를 이른다. 대체로 이들은 청렴한 관리다. 대표적인 인물로 춘추시대 초나라의 孫叔敖(손숙오)를 들 수 있다.
손숙오는 초나라의 處士(처사)였다. 재상 虞丘(우구)가 莊王(장왕)에게 손숙오를 천거하여 자기 대신 재상으로 삼게 했다. 재상이 된 손숙오는 가르침을 베풀고 백성들을 이끌어 위와 아래가 화합하도록 했는데, 이로써 풍속이 매우 아름다워졌다. 정치적으로 금령을 느슨하게 했음에도 관리들 가운데 간사한 자가 없어지고 도적이 생기지 않았다. 가을과 겨울에는 백성들에게 산에서 사냥하고 나무를 베게 했으며, 봄과 여름에는 물고기를 잡도록 했다. 백성들은 편하게 살 수 있었으므로 모두 즐거워했다.
어느 날, 장왕은 화폐가 가볍다고 여겨 작은 것을 크게 만들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불편하게 여겨 모두들 사용하지 않았다. 시장을 관리하는 市令(시령)이 재상에게 보고했다.
"시장이 혼란해져 백성들이 편안해 하지 않으며, 장사를 계속해야 할지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재상이 물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소?" "석 달 되었습니다." "물러가시오. 내가 되돌려 놓겠소."
닷새 뒤, 재상은 조정에서 왕에게 이 일을 말했다. "전에 화폐를 바꾼 것은 이전 화폐가 가볍다고 여겨서입니다. 이제 시령이 와서 '시장이 혼란해져 백성들이 편안해 하지 않으며, 장사를 계속해야 할지 머뭇거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전대로 회복시켜 주십시오." 왕은 이를 허락했다. 명령을 내린 지 사흘 만에 시장은 예전과 같아졌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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