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52> 知必死則天下不爲也

bindol 2021. 6. 4. 06:06

알 지(矢-3) 반드시 필(心-1) 죽을 사(-2)
곧 즉(刀-7) 하늘 천(大-1) 아래 하(一-2) 아닐 불(一-3) 할 위(爪-8) 어조사 야(乙-2)

 

'한비자' '내저설 상'의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사지가 찢겨 죽어서 저자에 내걸리는 것보다 더한 형벌은 없는데도 그만두지 않는 것은 반드시 걸리는 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 이런 말을 하는 자가 있다고 하자. '너에게 천하를 주는 대신 네 몸을 죽이겠다!' 그러면 평범한 사람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 이야기 끝에 한비자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夫有天下, 大利也, 猶不爲者, 知必死. 故不必得也, 則雖辜磔, 竊金不止; 知必死, 則天下不爲也."(부유천하, 대리야, 유불위자, 지필사. 고불필득야, 즉수고책, 절금부지; 지필사, 즉천하불위야)

"무릇 천하를 얻는 것은 커다란 이익이지만, 그래도 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죽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걸리는 게 아니라고 여겨지면 비록 사지를 찢어 죽인다고 해도 금을 캐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죽게 되리라는 걸 안다면 비록 천하를 준다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다."

금을 캐다가 걸리면 사지를 찢어 죽인다고 했음에도 금령을 어기는 자가 많은 것은 이익을 좋아하는 본성 때문이다. 그렇지만 금령을 어긴 것이 반드시 드러나서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결코 어기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걸려서 죽게 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것, 이것이 중형주의를 채택하는 이유다.

그러나 유가에서는 법가처럼 사람의 본성이 본래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性惡說(성악설)'을 주장한 순자가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 분명하며, 선하다는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하기는 했으나, 그 본성을 교화하여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하여 법가와는 전혀 다른 입장에 있다. '순자'의 첫 편이 '勸學(권학)'이고 그 서두에 "배움은 그만둘 수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타고난 본성이 나쁘더라도 배움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순자가 예치를 주장한 근거이기도 하다.

8-2(151회)에서 말하는 백성의 두려움도 순자가 말한 예치에서 비롯된 두려움, 곧 교화로 말미암아 일어난 두려움이다. 금령을 어기면 반드시 중형을 받게 된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을 일삼거나 속임수를 써서는 안 된다는 도덕 감정에서 나온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삼가는 마음"을 뜻하는 愼(신)과 다르지 않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박으로서 두려움이 아니라, 내부에서 자각하여 일어난 두려움이다. 다음 글에서 말하는 '군주를 두려워하는 마음'과 전혀 다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