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53> 法者, 治之正也

bindol 2021. 6. 4. 06:07

- 법 법(水-5)것 자(老-5) 다스릴 치(水-5) 의 지(丿-3) 상도 정(止-1) 어조사 야(乙-2)

 

'相君書(상군서)' '去彊(거강)'에 나온다. "重罰輕賞, 則上愛民, 民死上; 重賞輕罰, 則上不愛民, 民不死上. 興國行罰, 民利且畏; 行賞, 民利且愛. 國無力而行知巧者必亡. 怯民使以刑, 必勇; 勇民使以賞, 則死."(중벌경상, 즉상애민, 민사상; 중상경벌, 즉상불애민, 민불사상. 흥국행벌, 민리차외; 행상, 민리차애. 국무력이행지교자필망. 겁민사이형, 필용; 용민사이상, 즉사)

"형벌을 무겁게 하고 상을 가볍게 하는 것이 군주가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니, 그래야 백성이 군주를 위해 죽는다. 상을 무겁게 하고 형벌을 가볍게 하는 것은 군주가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니, 그러면 백성은 군주를 위해 죽지 않는다. 흥성하는 나라에서 형벌을 시행하면 백성은 이롭게 여기면서 군주를 두려워하고, 상을 내리면 백성은 이롭게 여기면서 군주를 사랑한다. 나라에 힘이 없으면서 교묘한 재주를 부리면 반드시 망한다. 겁 많은 백성을 형벌로써 부리면 반드시 용감해지고, 용감한 백성을 상으로써 부리면 죽음을 무릅쓴다."

武帝(무제) 때 유가 사상이 정치이념으로 중시되면서 '儒敎(유교)'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다. 그러나 무제가 유교 이념에 입각해 통치한 군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무제의 통치 기간에 유교가 다른 학파 학문을 제치고 우뚝 선 것은 사실이나, 유교 이념이 곧바로 통치술에 영향을 주거나 지식인들의 사유에 깊이 침투해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사실 무제는 법가적 군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무제 이전에 文帝(문제)와 景帝(경제)가 통치하면서 한 제국은 부강해졌는데, 이때를 '文景之治(문경지치)'라 일컫는다. 특히 문제는 명군으로 꼽히는 군주다. 高祖(고조) 劉邦(유방)이 죽은 뒤에 권력을 장악한 여태후와 여씨 일족이 유씨를 내쫓으려 반란을 꾀했다가 축출되고서 조정 대신들이 추대하여 즉위한 이가 문제다. 멀리 북쪽 변방인 代(대) 땅에서 왕으로 있다가 갑자기 황제로 즉위했기에 통치 기반이 취약했다. 그럼에도 덕치를 통해 통치 기반을 강화하고 정국을 안정시켰다.

문제는 즉위하자마자 "法者, 治之正也, 所以禁暴而率善人也. 今犯法已論, 而使毋罪之父母妻子同産坐之, 及爲收帑, 朕甚不取."(법자, 치지정야, 소이금포이솔선인야. 금범법이론, 이사무죄지부모처자동산좌지, 급위수노, 짐심불취) 곧 "법이란 다스림의 원칙으로, 포악함을 막고 사람들을 착한 쪽으로 이끄는 것이다. 법을 어겨 죗값을 치렀는데도 죄 없는 부모와 처자, 형제를 함께 연좌시켜 관노로 삼으니, 짐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서 連坐制(연좌제)를 폐지했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