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62> 世宗과 高若海

bindol 2021. 6. 5. 04:22

대이을 세(一-4)마루 종(-5)성 고(高-0)같을 약(艸-5)바다 해(水-7)


高若海(고약해)는 여전히 소인이라는 말을 고집스럽게 썼다. 결국 육기법을 혁파하자는 말인데, 고약해는 계속 이렇게 말했다.


"육기법을 시행하면서부터 나라의 재물을 훔친 수령이 많아졌습니다. 또한 신하가 6년 동안이나 밖에 있어 조회에 참여할 수 없게 되니, 臣子(신자)의 마음에 어찌 억울함이 없겠습니까."

갑자기 세종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신하는 군부에게 감히 망령되게 말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 수령으로서 재물을 훔친 자가 누구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약해가 끼어들려 하자, 세종이 말했다.

"경은 내 말을 자세히 듣지도 아니하고 감히 말하려는가? 경은 끝까지 들으라."

세종은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외방의 수령을 열두어 고을째 지낸 자도 간혹 있다. 경은 겨우 한 고을을 지내고서 그 싫어함이 이와 같으니, 어찌 된 것인가!"

고약해의 언성도 높아졌다.

"재물을 훔친 자를 신이 아무개라고 지적해서 말할 수는 없사옵니다. 지금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臟物(장물)이 이미 나타난 자가 두세 명은 되옵니다."

고약해는 작심한 듯이 말했다.

"신이 처음 육기법을 혁파할 것을 청했으나 전하께서 윤허하지 않으셨고, 두 번째 청해도 윤허하지 않으시니, 신은 실로 유감이옵니다. 전하께오서 만약 聖明(성명)하지 않으시다면, 신이 어찌 감히 조정에 벼슬하겠나이까! 대간과 재상들이 다 좌우에 있사온데, 신이 어찌 감히 한 몸의 私情(사정)을 함부로 주상 앞에 늘어놓겠습니까! 이제 윤허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도리어 신더러 그르다 하시오니, 신은 실로 실망했습니다."

도대체 신하가 군주에게 '실망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망발이나 다름이 없는데, 고약해는 한술 더 떠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갈 기세였다. 세종은 자못 당황하며, "알아들었으니, 다시 자리에 앉으라!"고 달래듯 말했다.

고약해가 이렇게까지 육기법을 혁파하자고 한 것은 그 자신이 외직에 나가게 될까 꺼려서였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군주에게 보인 태도는 참으로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