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71> 反中庸

bindol 2021. 6. 5. 05:05

거스를 반(又-2)가운데 중(-3)평소 용(广-8)

 

판단이 올바르지 못하거나 행동이 그릇되더라도 홀로 있으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 때는 꽤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내 판단이 올바르지 못하면, 우선 배우자를 잘못 고른다. 자식을 낳아서 기르더라도 제대로 기를 수 없다. 집안일에서 무엇이 긴요한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할 지를 살피지 않고, 그저 제 마음대로 또는 제 감정대로 처리해나갈 것이니, 어찌 가족이 구순하고 집안이 가지런해지겠는가.

요즘 자녀의 학교에 찾아가서 교사에게 행패를 부리는 학부모에 관한 소식이 종종 언론이나 방송 매체를 통해 보도되고 있다. 그 학부모들을 잘 보라. 제 자녀가 잘못한 일도 다른 아이들이 잘못한 것이라 우기거나 교사들의 무능 탓으로 돌린다. 제 자녀를 지나치게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판단과 행동이 치우치고 어그러진 것이다. 이는 스스로 돌아볼 줄 모르는 데서 비롯된 일이다.

대체로 사람은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을 더 아낀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기면 하찮게 여기며 건방지게 군다. 능력이나 자신감이 부족하면 괜히 무서워하거나 지나치게 삼간다. 이 모두 자연스럽고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게 자신을 옭아매거나 남을 괴롭히고 일을 그르치거나 망칠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자신의 마음이나 감정에 치우쳐 있으므로 올바르게 보고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공자는 “過猶不及”(과유불급) 곧 “지나침은 모자란 것과 같다”고 말했다. 지나침이나 모자람은 모두 어느 한쪽으로 기운 것, 즉 치우친 것이다. 그래서 둘은 같다고 말했다.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 치우침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지나침도 모자람도 아닌 가운데, 곧 中(중)을 알고 중을 잡는 일이다. ‘中庸(중용)’은 곧 일상에서 중을 알고 중을 잡아서 사는 일을 뜻한다. 이 중용을 끊임없이 실행하려는 이가 군자고, 그 생각과 말과 행동이 중용에서 늘 벗어나는 자가 소인이다. 그래서 공자도 “君子中庸, 小人反中庸”(군자중용, 소인반중용) 곧 “군자는 중용을 하고, 소인은 중용을 거스른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