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치(至-4)가운데 중(丨-3)어우러질 화(口-5)
中(중)의 뜻을 흔히 가운데라 하는데, 이래서는 선뜻 알기 어렵다. 좀 추상적이다. 구체적인 뜻을 알 필요가 있다. 속뜻은 알맞음이나 어우러짐, 어울림이다. 이를테면, 끊임없이 바뀌고 옮아가는 관계나 상황 속에서 가장 알맞은 것, 가장 잘 어우러지는 것, 어떤 대상이나 상황과도 잘 어울리는 것을 이른다. 그래서 和(화)와도 통한다. 그런데 이 중은 말하기는 쉬우나 실행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특히 감정이나 마음에서는 더욱 그렇다.
‘중용’에 나온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희노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중야자, 천하지대본야; 화야자, 천하지달도야. 치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
“기쁨·성냄·슬픔·즐거움 따위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알맞음이라 하고, 일어나서는 모두 상황에 알맞은 것을 어울림이라고 한다. 알맞음이란 천하의 큰 뿌리요, 어울림이란 천하의 온갖 것이 가야 할 길이다. 알맞음과 어울림이 이루어지면, 하늘과 땅이 제자리를 지키고 온갖 것이 잘 자란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어떠한 감정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中(중)이라고 한 점이다. 이를 아무런 감정이 없는 상태로 여길 수도 있는데, 그건 오해다. 사람에게 어떠한 마음도 감정도 없다면 저 나무나 바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따라서 이 중은 앞서 말했듯이 치우침이 없는 것을 이른다. 아직 마음이나 감정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는 치우침이 없는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런 마음도 감정도 없을 수 있겠는가? 사람은 상대가 있든 없든 어떤 마음이나 감정을 지닌다. 상황이 달라지면, 그 마음도 감정도 달라진다. 그래서 마음을 잡도리하고 감정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는 일이 쉽지 않다.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 치우친다. 치우치니 관계가 어그러지고 상황에 맞지 않으며 일을 그르친다. 그런 치우침이 없는 마음이나 감정이라야 관계가 원만해지고 상황도 순조로워진다. 이를 ‘중용’에서는 어울림인 和(화)로써 표현했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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