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73> 婆子焚庵

bindol 2021. 6. 5. 05:12

할미 파(女-8)아들 자(子-0)불사를 분(火-8)암자 암(广-8)

 

그런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대에게 알맞은 마음을 지니거나 상황과 어우러지는 감정을 일으킬까? ‘중용’에서 “알맞음과 어울림이 이루어지면, 하늘과 땅이 제자리를 지키고 온갖 것이 잘 자란다”고 한 말을 보면, 현자나 성인이라야 가능한 경지인 듯하다.

禪家(선가)에서 널리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중국에 어떤 노파가 있었다. 노파는 20년 동안 오로지 한 승려를 뒷바라지했다. 그 승려가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암자를 지어주고 날마다 공양했다. 이윽고 노파는 그 승려가 얼마나 성취했는지 궁금했다. 그의 성취를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에 노파는 어여쁜 처녀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 노파는 처녀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네가 가서 교태를 부리며 스님을 껴안아. 그리고 ‘지금은 어때요?’ 하고 물어봐!”

암자에 올라간 처녀는 스님을 껴안고 어루만지면서 “지금은 어때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승려는 별다른 반응이 없이 제법 시적으로 대답했다.

“枯木倚寒巖, 三冬無暖氣.”(고목의한암, 삼동무난기) “마른 나무가 차가운 바위에 기대고, 엄동설한에는 따스한 기운이 없네.”

처녀는 돌아와서 승려의 태도와 말을 노파에게 전하니, 노파가 아주 성을 내며 소리를 쳤다.

“아이고, 내가 20년 동안이나 그런 속물을 먹여 살렸다니!”

노파는 곧바로 그 승려에게 달려가서는 암자를 불태워버렸다. 이를 흔히 ‘婆子焚庵(파자분암)’이라 한다.

‘婆子焚庵(파자분암)’ 이야기가 무슨 대단한 話頭(화두)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아주 심각하게 분석할 필요는 없다. 深奧(심오)하기 짝이 없는 철학이나 不可思議(불가사의)한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박하게 느끼고 생각해야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불교에서 수행은 궁극적으로 ‘욕망의 불을 끈 상태’인 解脫(해탈)을 지향하지만, 그렇다고 한낱 나뭇등걸이나 차가운 바위가 되려는 것은 아니며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