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장(長-0)고를 평(干-2)큰 대(大-0)싸울 전(戈-12)
進退兩難(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린 조괄이 정예부대를 이끌고 직접 싸우러 나갔지만, 진나라 군사가 쏜 화살을 맞고 조괄은 죽었다. 결국 군사 수십만 명이 진나라에 항복했고, 진나라는 이들을 모두 땅에 묻어 죽였다. 이 싸움이 그 유명한 ‘長平大戰(장평대전)’이다. 이 싸움으로 조나라의 군사 45만 명이 죽었다. 조나라는 초나라와 위나라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겼으나, 천천히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반면에 진나라는 이 대전의 승리로 천하 통일의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예나 이제나 모든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자식이 잘 되면 그 부모 또한 호의호식하며 영예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도 강해서이지만, 그 자식을 통해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사사로운 마음 또한 적지 않아 그럴 것이다.
그런데 마복군 조사와 아내는 달랐다. 아들이 장군이 될까 오히려 걱정했고, 왕이 장군으로 임명하자 부인은 말렸다. 아들 조괄에 대해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사랑했기에 그렇게 했다.
능력이 없으면서 일을 맡으면 반드시 그르치게 되고, 그르치면 그 화가 자신에게 돌아갈 뿐 아니라 집안에도 미친다. 능력이 모자란 자에게 나라의 큰일을 맡기는 것은 적국에는 크나큰 행운을, 제 나라와 백성들에게는 재앙을 주는 일이다. 조사와 그 부인은 그런 이치를 잘 알고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러나 효성왕은 조괄에 대한 세평(世評)과 적의 계략에 속아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실행했다. 선입견과 어리석음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바람에 치우쳐서는 안 될 때 치우쳤던 것이다.
조괄의 모친이 왕에게 한 말에는 깊은 이치가 숨어 있다. 남편인 조사가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며 벗을 사귀었는지, 또 군대를 이끌면서 하급 관리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두루 잘 알고 있었다. 말하자면 조사는 평소에 中庸(중용)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사가 출전하면 마땅히 병사들의 신뢰를 얻어 군대를 잘 이끌고 싸우리라는 사실을 눈앞에서 보는 듯 알 수 있었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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