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244> 花石綱

bindol 2021. 6. 6. 05:10

- 꽃 화(艸-4)돌 석(石-0)줄 강(糸-8)

 

1100년 정월, 송나라 哲宗(철종)은 겨우 25세의 나이에 후사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철종의 뒤를 이어 당시 端王(단왕)이었던 趙佶(조길)이 제위에 올랐다. 그가 유명한 휘종(徽宗, 1100∼1125 재위)이다.

휘종은 書畵(서화)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는데, 특히 회화에서는 당대 제일이라 불릴 정도였다. 글씨에서는 자신의 호인 瘦金(수금)을 따서 瘦金體(수금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만들어냈다. 이 서체는 호리호리하면서도 약한 느낌을 주지 않는 풍격이 있다고 한다. 詩文(시문)에도 뛰어나 御集(어집) 100권이 있었다고 ‘宋史(송사)’에 기록되어 있다.

예술에 뛰어났으며 황제가 되리라고 기대한 적도 없었으므로 황제로서 능력을 갖추려 애쓴 적이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 황제가 되었다. 황제가 된 휘종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했는데, 특히 서화와 기묘한 물품들을 수집하는 일에 골몰했다. 서화에 눈썰미가 있는 환관 童貫(동관)을 남쪽으로 파견했다. 동관은 항주에서 역시 서화에 밝은 蔡京(채경)을 만나 서로 의기투합했다. 이때 채경은 좌천되어 있었는데, 동관이 휘종에게 입김을 불어넣어 중앙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단순한 복귀가 아니었으니, 휘종은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휘종은 이들과 함께 서화와 시문을 이야기할 때 가장 즐거워했다고 한다. 휘종은 정치를 그들에게 맡겨 놓고 자신은 우아한 예술 활동을 하며 지냈다. 예나 이제나 예술을 하려면 돈이 들었다. 더구나 황제로서 수집벽도 있었으니, 들어갈 돈이 적지 않았다. 채경은 황제가 사치를 부릴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서 기꺼이 백성들을 착취했다.

휘종은 花石(화석)을 좋아했다. 화석이란 기이한 꽃무늬가 있는 돌이다. 이 돌을 수집하는데 황제의 권세를 썼다. 朱冲(주충)이라는 상인이 이를 알고 浙江(절강) 지역에서 진기한 화석들을 찾아서 바쳤다. 휘종이 매우 좋아했으므로 바치는 양이 해마다 점점 많아졌고, 이를 옮겨 오느라 배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이어져 淮水(회수)와 汴河(변하)를 메웠다. 이를 ‘花石綱(화석강)’이라 불렀다. 여기서 綱(강)은 긴 행렬을 이르는 말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