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246> 先治後樂

bindol 2021. 6. 6. 05:12

- 먼저 선(儿-4)다스릴 치(水-5)뒤 후(彳-6)즐길 락(木-11)

 

靖康之禍(정강지화)로 말미암아 황제와 그 종실 사람들이 모조리 포로로 끌려갔으니, 휘종이 애써 모았던 진기한 물건들도 금나라가 가져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예술을 지극히 사랑하여 예술가들을 후원하기도 했던 풍류 천자 휘종! 자신의 취미에만 몰입하고 백성의 삶과 나라의 안위에는 무관심했던 황제는 황량한 만주의 僻地(벽지)로 끌려가서는 눈이 멀었고, 나중에 병으로 죽었다. 그의 아들 흠종도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의 송나라를 후대에는 北宋(북송)이라 불렀다. 북송은 그야말로 휘종의 취향과 더불어 몰락의 길을 걸었던 셈이다.

‘순자’ ‘王覇(왕패)’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急逐樂而緩治國者, 非知樂者也. 故明君者, 必將先治其國, 然後百樂得其中. 闇君者, 必將急逐樂而緩治國, 故憂患不可勝校也, 必至於身死國亡然後止也. 豈不哀哉!”(급축락이완치국자, 비지락자야. 고명군자, 필장선치기국, 연후백락득기중. 암군자, 필장급축락이완치국, 고우환불가승교야, 필지어신사국망연후지야. 기불애재!)

“즐거움을 쫓느라 급급해서 나라 다스리는 일을 느슨하게 하는 자는 즐길 줄 모르는 자다. 현명한 군주는 반드시 먼저 나라를 잘 다스린 뒤에 온갖 즐거움을 그 속에서 얻는다. 어리석은 군주는 꼭 즐거움을 쫓느라 급급해서 나라 다스리는 일을 느슨하게 하는데, 이 때문에 걱정과 환난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반드시 그 몸은 죽고 나라가 망한 뒤에야 그만두게 된다.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닌가!”

북송의 정치가 范仲淹(범중엄, 989∼1052)은 <岳陽樓記(악양루기)>에서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선천하지우이우, 후천하지락이락) 즉 “천하 사람들이 걱정하기에 앞서 걱정하고,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통치자나 정치가들이 대체로 자신들의 안위와 즐거움을 챙기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들의 고달픈 삶은 안중에 두지도 않는 현실을 직시한 데서 나온 통렬한 비판이다. 그러나 권력을 쥔 자들이나 권력에 가까이 있는 자들, 심지어는 그 하수인들조차 얼마나 이 말을 우습게 여기는지!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