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장(弓-8)살 거(尸-5)바를 정(止-1)성 위(鬼-8)참될 충(心-4)똑똑할 현(貝-8)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는 崇禎帝(숭정제, 1628∼1644 재위)다. 대체로 후대 사람들은 왕조의 마지막 군주를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명나라 멸망에서는 숭정제보다 그 이전의 황제들을 비난해야 마땅하다. 특히 48년의 재위 동안 거의 하는 일이 없었고 심지어 25년 동안 조정에 나가지도 않은 萬曆帝(만력제, 1572∼1620 재위)가 몰락의 싹을 틔웠다.
만력제는 열 살에 즉위했다. 그때 張居正(장거정, 1525∼1582)이 어린 황제를 보좌했다. 황제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은 장거정은 수완을 발휘하여 나름대로 혁신적인 정책을 펴나갔다. 행정을 개혁하여 경비를 절감하고, 황하의 치수공사도 성공했으며, 만성적인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토지를 측량하고 一條鞭法(일조편법)도 시행했다. 장거정의 개혁으로 명나라 재정은 흑자를 기록하면서 호전되었다. 그러나 이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언론을 탄압하고 서원들을 폐쇄하는 등 독재를 일삼았으므로 그에 대한 평가는 간단치 않다.
어쨌든 장거정이 동분서주하며 국정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동안에는 명나라의 명운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러나 그가 죽자 갖가지 문제들이 불거져 나왔다. 무엇보다도 그를 이을 인물이 없었고 또 황제는 25년 동안 조정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황제가 황태자 책봉을 미루는 사이 황실 내부에서는 불화가 빚어졌고, 황제의 부재로 조정에서는 분란이 거듭되었다. 모처럼 장거정이 되살린 명운이 다시 꺼져갔다.
만력제가 죽고 그의 장자가 즉위했으니, 14대 황제 泰昌帝(태창제, 1582∼1620)다. 그러나 태창제는 즉위한 지 29일 만에 급작스럽게 죽었다. 그 뒤를 태창제의 맏아들 天啓帝(천계제, 1620∼1627 재위)가 이었으나,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한 터에 나이도 어려 유모인 客氏(객씨)에 매우 의지했다. 객씨와 미리 손을 잡았던 환관 魏忠賢(위충현, 1568∼1627)에게 권력이 넘어갔다. 위충현은 본래 시정의 잡배였는데, 도박으로 빚을 졌다가 고민 끝에 거세해 환관이 된 인물이다. 천계제를 옹립한 일로 중용되어 전권을 쥔 그는 거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전횡을 일삼았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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