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274> 黃髮番番

bindol 2021. 6. 7. 05:48

누른빛 황(黃-0)머리털 발(-5)횟수 번(田-7)

 

그때 晉(진)나라는 文公(문공)이 죽어 喪中(상중)에 있었다. 태자 襄公(양공)은 활이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자 화를 내며 군사를 일으켰다.

효산에서 진나라 군대를 막으며 공격하여 대파하고 세 장군을 사로잡았다. 이것이 효산 전투다. 맹명시 등은 晉(진)나라 문공의 부인 덕분에 겨우 귀국할 수 있었다. 세 장수가 돌아오자, 목공은 소복을 입고 교외까지 나가 그들을 맞이하면서 통곡했다.

“내가 백리혜와 건숙의 말을 듣지 않아 세 사람이 굴욕을 당했다. 세 사람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대들은 설욕을 위해 마음을 다하고 게으르지 말라.”

목공은 세 사람에게 본래의 관직을 주었고 더욱 도탑게 대해주었다. 목공은 자신의 허물을 잘 알았고 또 인정했다.

현명한 인재를 곁에 두고 그들의 능력과 의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목공은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재위 36년(기원전 624년)에 드디어 맹명시 등이 군대를 이끌고 晉(진)나라 군대를 쳐서 대파하여 효산 전투의 패배를 설욕한 것도 목공 이 인재를 지극히 아끼며 믿고 썼기 때문이다.

승전 소식을 들은 목공은 황하를 건너갔다. 효산 전투에서 죽은 병사들을 위해 봉분을 만들어 장사를 지내고 사흘 동안 곡을 했다. 그러고는 군사들에게 맹세했다.

“嗟士卒! 聽無譁. 余誓告汝! 古之人謀黃髮番番, 則無所過.”(차사졸! 청무화. 여서고여! 고지인모황발번번, 즉무소과.)

“아, 병사들이여! 조용히 내 말을 들으라. 내 너희에게 맹세한다! 옛사람들은 일을 꾀할 때 늘 백발의 노인과 상의했기에 과오가 없었다.”

목공은 건숙과 백리혜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거듭 반성하며, 후세 사람들이 자신처럼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이런 맹세를 했던 것이다.

목공이 14-1(258회)의 ‘진서’에 나오는 말을 한 것은 바로 이때였으리라 추정된다.

이로부터 진(秦)나라는 열두 나라를 병합하는 등 천 리 땅을 개척하여 마침내 서쪽 지역의 패주가 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 진(晉)나라는 번성하지 못했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