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윤인현의 한시(漢詩) 기행] ⑧ 이백(李白)과 옥진공주(玉眞公主)

bindol 2021. 7. 25. 04:34

홀로 경정산에 앉아 그녀향한 애틋함 그리다

▲ 중국 안휘성 선성시에 위치한 해발 317미터의 경정산 모습이다.

경정산 아래쪽에는 옥진공주의 무덤과 상사천(相思泉)이 있고,

7부 능선쯤에 태백독좌루가 있다. 경정산의 크기는 인천시 계양구에 위치한 계양산만하다.

▲ 경정산 아랫부분에 있는 옥진공주의 동상과 무덤, 그리고 묘지석이다.

동상 뒤쪽 대나무가 많이 나 있는 것이 '황고분'이고,

오른쪽 검은 물체가 '옥진공주 묘지석'이다.

옥진공주가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옥진공주 총애'따라 오빠 현종에 천거·벼슬내리게 해
7번씩 山 찾기도 … 고마움·사모마음 등 여러이유 추측

이백(701~762)은 42세부터 44세까지 당(唐)나라 궁정에 있을 때 예종의 10번째 딸이면서 현종과 어머니가 같은, 옥진공주(玉眞公主)와의 사랑이 있었던 것 같다.

먼저 중국 안휘성 선성의 경정산(敬亭山)에 있는 옥진공주의 비문(碑文)의 내용을 살펴보자.

'옥진공주의 어머니 두씨(竇氏)가 조모인 측천무후에 의해 살해되었고, 옥진공주는 고모인 태평공주에 의해 양육되었다.

오빠 현종(玄宗)과 고모 등이 도교를 좋아하여 옥진공주도 그 영향을 받아 두구년화(豆 年華) 곧 13세~14세 무렵에 도교의 여관이 되었으며, 지영법사(持盈 師)의 도호(道號)를 받았다.

숭창현의 세금을 받아 생활하였으며, 도교 입문 후에는 천하 명산을 돌아다녔으며, 식자(識者)들과 두루 교분 맺기를 좋아하였다.

평민 출신이면서 같은 도우(道友)인 이백을 총애하여 오빠인 이융기(현종)에게 천거하여 한림학사 벼슬을 내리게 하였다.

이백이 권력자들의 참언을 만나 현종으로부터 사금(賜金)을 받고 도교로 보내졌다.

이 일로 옥진공주는 기분이 우울하여 분노한 후에 상소를 올리고 공주의 직책도 버렸다.

읍사(邑司)에 근거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위 비문의 내용처럼, 이백과의 관계가 남다르다.

그리고 이백이 생전에 경정산을 7번이나 올랐다고 하는데, 그것 또한 옥진공주와의 인연 때문이 아닐까?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 이백

뭇새들 높이 날아 가 버리고,
衆鳥高飛盡(중조고비진),
외로운 구름 홀로 간 뒤 한가롭네.
孤雲獨去閑(고운독거한).
서로 보매 둘이 물리지 않는 것은,
相看兩不厭(상간양불염),
다만 경정산이 있기 때문이네.
只有敬亭山(지유경정산).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은 53세(753)의 이백이 경정산에 앉아 무심한 경정산을 유심한 인간이 느끼는 다정함을 수식 없이 지은 시이다.

유랑생활을 하던 이백은, 도교에 입문한 옥진공주의 추천으로 한림봉공(翰林供奉)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는데, 그 자리도 간신 양국충과 환관 고력사의 참언 때문에 2년 남짓하고는 다시 만유(漫遊)의 길을 떠나야 했다.

유랑의 10년이 되어갈 때, 그는 이 경정산에 와서 자신의 심회를 읊은 것이다.

함께 하던 새소리와 한가로운 구름도 이제는 떠나고 없다. 그런데 경정산만은 처음부터 그대로이다.

옥진공주의 묘지석에, 옥진공주가 이백을 천거했다고 하였고, 간신들로부터 참언을 받아 이백이 벼슬에서 물러났으며 그래서 상소문도 올렸다고 했다.

또 기분이 울적하고 화가 나서 모든 직책을 버렸다고도 하였다.

이런 옥진공주는 안사의 난 후, 이 경정산에 와서 762년 죽을 때까지 은거하였다.

사망 연대가 이백과 동일한 762년이다.

뭇새들이 다 날아 가버리 듯, 이제는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나니 모든 것이 허망한 것 같지만, 그래도 한가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와 경정산은 서로 바라보지만, 둘이 물리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경정산에 은거하고 있는 도우(道友) 옥진공주 때문은 아닐까?

자기를 무척 아껴준 옥진공주가 경정산에 있기에 아무리 바라보아도 싫증나지 않고 한가로울 수 있는 것이다.

이백이 경정산을 7번씩이나 찾았다는 것은 단지 경정산이 좋아서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고 오빠인 현종에게 천거까지 해 준 옥진공주에 대한 사모의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백이 말년에 경정산이 있는 안휘성에 머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보아도 물리지 않은 경정산만이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지금까지는 <독좌경정산> 시에 이백과 옥진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숨어 있는 줄을 몰랐다.

무정한 산이 유정한 인간을 위로해주는 시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현장을 와보니, 당나라 현종의 누이동생인 옥진공주와의 러브스토리가 숨어 있었다.

이런 것이 한시 기행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인하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