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윤인현의 한시(漢詩) 기행] ⑦ 사조루(謝脁樓)에서의 이백

bindol 2021. 7. 25. 04:31

술 들이켜도 '고통·번민' 시름만 더욱 깊어지는구나

▲ 사조루 옆에 있는 회사정(懷謝亭)이다. 이백이 남제 시대 때 시인 사조를 몹시 흠모했기에,

사조루 옆에 회사정을 세운 듯하다. '회사정'은 '사조를 그리워하는 정자'라는 뜻이다.

 

'선주사조루전별 교서숙운' 이운과 전별하면서 지은 시
이백, 궁중서 쫓겨난 후 복잡한 심경 '낭만적'으로 표현

감상할 시는 이백이 지은 <선주사조루전별 교서숙운(宣州謝 樓餞別校書叔雲)>이다.

이 시는 안록산의 난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던 천보(天寶) 13년(753) 가을, 이백이 선주(지금의 안휘성 선성)에 머물 당시 감찰어사로 와 있던 이운(李雲)과 사조루에서 전별하면서 지은 시이다.

사조루는 남제(南齊) 때, 사조(謝 , 464~499)가 선성 태수로 있을 때 지은 누각이다.

이백은 사조의 시를 몹시 좋아하여 죽을 때도 사조루 근처에서 죽었다.

다음 시에서도 사조처럼 이백 자신의 문장도 맑고 구김이 없다고 하였다. 제목에서의 '숙(叔)'은 친척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공경의 뜻으로 쓰인 글자이다.

 

선주사조루전별교서숙운 이백(李白)

宣州謝 樓餞別校書叔雲 <선주의 사조루에서 교서 숙운을 전별하다>

나를 버리고 간, 棄我去者(기아거자),
지난 세월은 머물러 있게 할 수 없고.
昨日之日不可留(작일지일불가류).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亂我心者(란아심자),
현재의 세월은 번민과 근심이 많도다.
今日之日多煩憂(금일지일다번우).
만리까지 부는 긴 바람이 가을 기러기를 보내고,
長風萬里送秋雁(장풍만리송추안),
이를 대하니 높은 사조루에서 술 마실 만하도다.
對此可以 高樓(대차가이감고루).
봉래(이운)의 문장은 건안의 풍골(강건한 기상)이 있고,
蓬萊文章建安骨(봉래문장건안골),
중간에 소사(사조)가 있어 또한 맑고도 수려하다.
中間小謝又 發(중간소사우청발).
두 사람 다 아주 씩씩한 생각이 하늘을 날고,
俱懷逸興壯思飛(구회일흥장사비),
푸른 하늘에 올라 해와 달을 보고자 한다.
欲上 天覽日月(욕상청천람일월).
칼을 뽑아 물을 갈라도 물은 다시 흐르고,
抽刀斷水水更流(추도단수수경류),
잔을 들어서 수심을 녹여보지만 수심이 다시 솟아난다.
杯銷愁愁更愁(거배소수수갱수).
사람이 이 세상 살면서 세상과 뜻 맞지 않더라도,
人生在世不稱意(인생재세불칭의),
내일 아침에는 산발한 머리로 작은 조각배를 희롱하련다.
明朝散髮弄扁舟(명조산발롱편주).



위의 시는 선주(선성)의 사조루에서 교서 벼슬을 지낸 아저씨뻘 되는 이운(李雲)과 전별하면서 쓴 시로, 형식은 물론 내용도 파격적이다.

전별시의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이백이 당나라 궁중에서 쫓겨난 후, 10여 년을 떠돌다가 비서성 교서랑 이운을 만나서 그 동안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묵은 감정을 토로하고 있는 듯하다.

당시의 암울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억제할 수 없는 어제와 오늘의 복잡한 심정이 낭만적으로 표현되었다.

지난 세월은 머물게 할 수 없고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현재의 근심과 번민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전별시인데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러면서 곧 떠날 이운은 문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건안 칠자의 풍모와 같은 강건한 기상이 배어 있음을 칭찬하면서 이백 자신의 문장도 남조의 사조에 비유하여, 맑고 구김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백은 자신과 이운의 기상을 낭만적 상상력으로 표현하여 푸른 하늘에까지 올라가서 해와 달을 구경하자고 하였다. 이별의 생각이 안 드는 시이다.

▲ 사조루 앞에 있는 이백의 모습이다. 어디를 돌아보고 있다.

아직도 속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가 보다. 아니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까?


또한 수심은 칼로 물 베기처럼 베고 베도 끝이 없으며 그 수심을 술로 달래보고자 하나 자꾸 더 솟아난다고 하였다. 이 세상과 자신이 품은 뜻이 맞지 않으면 내가 이 세상을 미련 없이 떠나면 된다고도 하였다.

이처럼 이백은 이운과의 전별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이별하고 있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는 미련 없이 산발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벼슬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백이 서서히 신선의 세계로 다가가고 있다.

 

인하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