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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새똥의 위력

bindol 2021. 8. 10. 04:48

[만물상] 새똥의 위력

김태훈 논설위원

 

김태훈 논설위원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8.10 03:18

 

‘티끌 모아 태산’이라지만 새똥이 쌓이면 섬도 만들어진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나우루 공화국이 그렇게 탄생했다. 애초 작은 산호초였는데 지구 남반구와 북반구를 오가는 철새들의 화장실이 됐다. 오랜 세월 쌓인 새똥이 굳어 땅이 되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면적이 서울 용산구와 비슷한 21㎢이고 주민도 1만명에 이른다. 섬을 만드는 엄청난 양의 새똥은 소설적 상상력도 자극했다. 007 시리즈 중 한 편인 ‘닥터 노’는 가상의 새똥 섬 크랩 키를 배경으로 쓰였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새똥에 섞인 인산염은 굵은 열매를 맺게 하는 질 좋은 비료다. 1800년대 후반 남미의 페루·볼리비아·칠레는 페루 앞바다에 있는 친차 제도(諸島)에 수백 m씩 쌓인 새똥 소유권을 두고 전쟁까지 벌였다. 훗날 새똥 전쟁이라 불린 이 분쟁으로 볼리비아는 바다를 잃고 내륙국이 됐다. 나우루 공화국은 인산염이 굳어져 생성된 인광석을 팔아 풍요를 누렸다. 한때 석유 부국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잘사는 나라로 등극했다가 1990년대 인광석이 고갈되며 경제가 추락했다.

▶새똥이 지구온난화를 막아준다는 연구도 있다. 여름에 북극권에 몰려드는 수천만 마리 철새의 배설물로 청정 북극 환경이 오염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새똥이 분해될 때 나오는 암모니아가 구름 형성을 도와 북극 온도를 낮춘다고 한다. 덕분에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온실효과가 어느 정도 상쇄된다는 것이다.

 

▶문명화된 대부분 도시에서 새똥은 처치 곤란한 골칫거리다. 몇 해 전 민물 가마우지 수천 마리가 중국에서 날아와 한강 밤섬에 배설물을 쏟아냈다. 섬에 자생하던 버드나무가 새똥에 뒤덮여 고사 위기에 처하자 제거 작업이 시작됐다. 딱딱하게 굳은 새똥이 떨어지지 않아 물대포까지 동원됐다. 수원에선 갑자기 늘어난 겨울 철새 떼까마귀의 배설물 때문에 세차장마다 북새통을 이루고 도로를 물청소해달라는 민원이 폭주한 적도 있다.

 

▶새만금 방조제 안쪽 호수에 친환경 에너지 시범사업을 한다며 설치한 태양광 패널 수백개가 ‘새똥광’이 됐다고 한다. 청소를 해도 사흘이면 다시 새똥 천지가 되고 새똥의 강한 산성에 패널이 부식되는 피해까지 본다는 것이다. 논처럼 허수아비 세우고 새가 접근 못 하게 공포탄이라도 쏴야 할 판이다. 새만금 방조제가 생긴 뒤 이곳은 철새 수십만 마리가 몰려드는 새들의 천국이 된 지 오래다. 새똥 재앙이 충분히 예견됐다는 뜻이다. 환경 사업마저 정권 코드 맞추려다 희한한 풍경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