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보다 더 실재적인 것은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첫 구절이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무대에서 두 남자가 누군가를 기다리며,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것뿐인 듯 무의미한 대화를 되풀이한다.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가 오늘은 오지 않지만, 내일은 꼭 온다는 전갈이 전해지며 제1막이 끝난다.
제2막도 같은 무대, 고목에 잎사귀가 달렸다. 포조는 시력을 잃고 럭키는 벙어리로 변하는데 이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의식의 해체과정을 상징한다.
블라디미르 : 내일 목매달기로 하지. (잠시 후) 고도가 오지 않는다면 말이야.
에스트라공 : 오면 어떡하구.
블라디미르 :우린 구원받게 되지. (사이) 자, 떠날까?
에스트라공 : 응, 가세나.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데 막이 내린다. “자, 떠날까?/응, 가세나.” 요즘 우리 부부의 대화 놀이 같다. 몇 해 전, 손잡고 가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포조처럼 시력이, 럭키처럼 청력이 떨어졌고 기다리던 ‘고도’는 나 역시 만날 수 없었다. 포조 대사에 귀를 기울인다. “… 어느 날, 저놈(럭키)은 벙어리가 됐고, 어느 날 난 장님이 됐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나고… 죽을 거요. … 이걸로 충분하지 않으냐 말이요?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고, 해가 잠깐 반짝이다가 다시 밤이 되는 거요.”
탄생과 죽음, 주야(晝夜)의 교체, 이것은 영원히 반복되는 자연현상이다. 그러나 본체로서 보자면 하늘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난 것이 아니다. ‘무(無)보다 실재적인 것은 없다’던 그를 생각하게 된다.
“시간이 머무는 것도 없고, 시간이 가는 것도 없다. 시간이 없는데 어찌 시간의 모습을 설명하겠는가?”라던 나가르주나와 일맥상통한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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