孤客 最先聞
외로운 나그네가 앞서 듣는다.
유우석(劉禹錫) 가을 시의 결구다. 매양 가을이 되면 고객(孤客)인 듯 나의 촉수도 달라진다. ‘문장은 운명의 달(達)함을 미워한다’는 두보의 말대로 명조가 유복하지 못해서인가. 가을 앓이가 심했던 그 시인들의 시를 나는 사랑한다.
“가을 바람 어디서 불어오는가/ 쓸쓸히 기러기 떼만 날려 보내네/ 이른 아침 정원에 부는 바람 소리/ 뉘보다도 외로운 나그네가 앞서 듣는다.”(전문)
고독한 시인에게서만 이런 절창의 시가 나온다. 안녹산의 난 중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작은 배, 그때도 가을이었다.
“…또 국화는 피어 다시 눈물 지우고 배는 매인 채라. 언제 고향에 돌아가랴….”
그 ‘고주일계(孤舟一繫)’는 두보 자신일 것이었다. 4년을 떠돌다가 고향으로 가는 배 안에서 죽으니 나이 쉰아홉. 지금은 선문(先聞)의 계절이다.
새벽녘 찬 공기가 사람을 때린다. 남 먼저 깨어나 감지하고 그것들의 기미를 알아차려야 한다. 벌써부터 눈에 띄지 않는 자연의 흐름은 숙살의 기운을 타고 나목지절로 향하고 있다. 몸으로 가을을 겪는 나이, 왕유(王維)도 나처럼 그런 심정이었을까? 시불(詩佛)로 칭송받는 그의 선미(禪味) 흐르는 가을 시를 읊조리게 된다.
“빈방에 홀로 앉았으면/ 늙어감이 서러웁다./ 이경(二更), 밖에서는 찬비가 내리고/ 어디선지 과일 떨어지는 소리. … 무엇일까?/ 벌레들이 방 안에 찾아와 운다.”
홀로 깨어 있는 밤, 어디선가 산과일 떨어지는 소리. ‘우중산과락(雨中山果落)’이 내게도 들릴 듯. 뭔지 알 듯한 소식! 나는 우주의 소리에 가슴을 열어둔다.
수필가
※유우석(772∼842) : 중국 중당(中唐)의 시인.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농민의 생활을 노래한 ‘죽지사(竹枝詞)’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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