用晦而明
斂華于衷 久而外燭염화우충 구이외촉
빛을 속에 감춰두라, 오래되면 밖으로 빛나리라
이덕무가 ‘영처문고’의 회잠(晦箴)에 적은 글의 마지막 구절이다.
‘영처’(영處)란 영아와 처녀를 가리키는 말로 작가는 실제로
아이처럼 천진스럽고 처녀처럼 수줍은 사람이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스스로 자랑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책만 읽는 바보’(看書痴·간서치)로 취급되며 북학파 연암 박지원과는 막역한 벗이었다.
“말을 황금처럼 아끼고 자취를 옥과 같이 감추라. 깊이 침묵하고 잠잠하여 꾸미거나 속여서는 안 된다. 빛을 속에 감춰두라, 오래되면 빛나리라.”
이같이 자신을 검속하며 다짐하듯 이 글을 쓴 때는 20대 초반. 양반과 서얼의 신분이 확연하던 때 서얼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었을까? ‘주역’의 회장(晦藏)에 눈길이 머물렀다. 밝은 태양이 땅속에 들어갔다는 ‘지화명이’(地火明夷) 괘. 암울한 시기를 당해 공자는 ‘용회이명’(用晦而明) 즉 ‘어둠을 써서 밝게 하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어려운 때를 당해 안으로는 내명(內明) 유순하게 처신하고,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지 않아야 외부의 해를 피할 수 있다는 조언이다. 주자(朱子)의 스승 유병산도 이 ‘회장’을 취해 그에게 원회(元晦)라는 자를 내리면서 이같이 덧붙였다.
‘나무는 그 뿌리를 어둡게 해 봄의 광채를 갈무리하며, 사람은 그 몸을 어둡게 해 신명(神明)을 살찌운다.’ 주자는 스승의 말씀을 새기며 호를 회암(晦庵)이라고 지었다. 냉골에 똑바로 앉아 ‘논어’를 읽었다는 이덕무를 생각한다. 그는 “공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온화한 말로 거친 마음을 사라지게 하고, 평정한 마음에 이르게 한단 말인가? 공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거의 발광해 뛰쳐나갈 뻔했다”고 밝혔다. 그는 후일 정조에게 발탁됐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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