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귀환
아저씨가 온 건 잘못이야.
마음 아파할 텐데. 내가 죽은 듯이 보일 테니까.
그렇다고 정말 죽는 건 아니지만.
생텍쥐페리(1900∼1944)의 ‘어린 왕자’에서 비행기 사고를 당한 아저씨와 조그만 별에서 내려온 어린 왕자가 헤어질 때 나누던 대화다. 돌담 아래 노란 뱀 한 마리가 어린 왕자를 향해 몸을 꼿꼿이 세웠다. 어린 왕자는 뱀의 도움으로 무거운 몸을 벗을 수 있었다. “아저씨가 고장 난 엔진을 고치게 돼서 기뻐. 아저씨는 이제 집에 돌아갈 수 있어….” “그걸 어떻게 알았지?” 어린 왕자는 거기에 답도 없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도 오늘 집으로 돌아가….” 사막의 언덕에서 별로 돌아가는 어린 왕자의 귀환은 곧 생텍쥐페리의 귀환이기도 했다.
그는 우편비행사로 북아프리카를 비행했으며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등의 작품을 남겼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군인으로서 정찰업무를 하다가 1940년 잠시 미국으로 망명, ‘어린 왕자’를 출간하고 1943년 8월 1일부로 입대하라는 명령서를 받아들고 뛸 듯이 기뻐하며 “죽임을 당하고 싶지는 않지만 죽어야 한다면 기꺼이 눈을 감을 거야”라는 말을 아내에게 남겼다고 한다. “남편이 죽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그녀는 훗날 회고했다.
비행기 사고로 부상해 아픈 몸이었지만 그는 쾌히 1944년 8월 1일, 8시 45분 기지를 출발한다. 10시 30분, 지상의 레이더가 생텍쥐페리의 흔적을 놓친다. 13시 귀대 예정 시간인데도 기지에 돌아오지 않는다. 14시 30분,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소령, 실종으로 추정.’ 유족에게 전달된 전보는 더욱 간단했다. “비행사 사망, 비행기 몸체는 손상 없음.” 생텍쥐페리는 비행하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 어느 때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별안간 대속(代贖)이란 단어와 함께 전쟁의 참화가 내 눈앞을 스쳐 갔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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