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분수
글에도 반드시 분수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자기 생각의 깊이에 알맞은 글을 써야만 어색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평생 수필만 쓰다가 ‘수필’이 된 사람, 매원 박연구 선생의 ‘수필전집’에 수록된 글이다. 2019년 11월 7일. 선생의 고향인 담양 조각공원 안에 문학비가 세워지고 제막식을 겸한 조촐한 축하행사가 있었다. 만추의 양광이 내리쬐는 오후 3시. 곱게 물든 단풍이 주변을 에워싸고 하늘은 맑고 드높았다. 군(郡)에서 마련한 대금 연주의 ‘소쇄원’은 창공을 휘돌아 굽이치는 대숲의 바람 속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시공을 초월한 자연의 한순간, 그 좌표 위에 함께한 자리. 20여 년 전, 강의 도중 선생의 음성이 들려왔다. “글에도 분수라는 것이 있는데 그걸 넘지 않아야….” 꼭 내게 하시는 말씀 같았다. 자기가 가진 능력 이상으로 평가받기를 원하는 범인의 어리석음. ‘글의 분수’란 삶의 분수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선생은 가난과 결핵으로 진학을 포기한 어느 실의한 날에 관상가를 찾았다. “‘고스까이(小使)’밖에는 안 된다. 고스까이이기는 하나 군수 정도는 된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 선생은 ‘고스까이 정신’에 철저한 삶을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자신을 ‘수필의 심부름꾼’으로 자처하며 수필 문학의 정착에 힘쓴 결과 ‘월간문학’ ‘현대문학’에 수필 신인상 종목이 추가됐다. 비로소 이 땅에 수필가라는 명패를 걸어놓을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해냈다. 글이란 곧 사람이다. 특히 수필은 자기를 표현하는 문학이다. 그런 만큼 의도적으로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금물이라던 선생의 말씀을 되새긴다. 마더 테레사가 ‘더 낮은 곳으로 가라’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처럼 선생의 ‘글의 분수’는 내게 겸손과 하심(下心)을 일깨운다. 분수를 안다는 일은 자기를 안다는 일이다. 자기에게 정직한 사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무언의 음성을 들었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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