弓影疑爲蛇蝎(궁영의위사갈) 寢石視爲伏虎(침석시위복호)
활 그림자를 보고도 뱀이나 전갈로 알고,
바위를 보고도 엎드린 범인가 두려워한다.
속담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경우처럼 사물을 바로 보지(正見·정견) 못하고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어두운 밤길, 나는 버려진 새끼줄을 보고 뱀인 줄 알고 흠칫 놀란 적이 있다. 다가가 실체를 확인하곤 다짐한 것이 있다. 엎드린 바위가 진짜 호랑이일지라도 미리 겁먹지 말고 실체를 확인한 다음 놀라자고. 일단 의심하는 마음이 들면 그 의심은 암귀(暗鬼)를 낳는다.
진(晉)나라 사람 두선은 악광(樂廣)을 만나 술잔을 받았는데 그 속에 뱀이 떠 있는 것을 봤다. 상사 앞이라 사양하지 못하고 단숨에 마셔버렸는데 그 후 백약이 무효인 병에 걸려 다 죽게 됐다. 악광이 그를 불러 전처럼 술을 따랐다. 술잔에 뱀 그림자가 떠오르자 그가 말했다. “이건 벽에 걸린 활의 그림자일 뿐일세. 괴이한 것이라곤 없네.”
마침 북쪽 벽 위에 붉은 활이 걸려 있었는데 그 모습이 술잔에 비쳐 뱀 모양을 띤 것이었다. 그의 병은 단박에 나았다. 병 중의 병은 마음의 병이 아닐까. 그 가운데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병은 죽음이리라. 달라이 라마는 ‘죽음이 없다’고 말씀한다. 그러니 없는 것 가지고 괴로워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충고한다.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얼룩덜룩한 끈을 뱀으로 착각하고 공포감을 느낀다. 그러나 불을 켜면 곧 그게 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람이 뱀을 없앤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뱀(죽음)은 존재한 적도 없었으니까. 달라이 라마는 왜 죽음이 없다고 하는가? 그건 이미 죽을 내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존재란 실체(實體) 없는 몸과 정신이 인연과 조건에 의해 가합한 집합체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아(無我)를 바로 아는 것을 ‘정견’이라고 한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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