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죽어가는 나치 청년이 내게 용서를 구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그의 침대 곁에 앉아 끝까지 침묵을 지킨 것은 옳은 일이었을까, 아니면 틀린 일이었을까?”
‘나치 헌터’로 알려진 사이먼 비젠탈(1908∼2005)이 자신의 에세이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에서 이렇게 반문한다. 그는 나치 수용소에 4년 가까이 갇혀 있었다. 89명의 친척을 잃고 아내와 겨우 살아남았다. 전쟁 이후 미국 전쟁범죄조사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평생의 추적 끝에 1100명의 나치 범죄자를 심판대에 세웠다.
그는 어느 날, 간호사의 부름을 받고 임종실에서 온몸을 붕대로 감싼 친위대 대원을 만난다. 죽음 직전의 청년은 노인과 여자와 어린아이 등 200명쯤 되는 유대인을 건물에 몰아넣고 불을 질렀다고 고백했다. 작가는 죽어가는 청년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다만 침묵할 뿐. 대신 그는 당신이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했겠느냐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철학자 마르쿠제는 “나 또한 죽어가는 SS대원의 요청을 거절했을 것”이라며 “범죄를 쉽사리 용서해주는 것이야말로 악의 문제를 희석시킬 뿐”이라고 일축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계 작가 프리모 레비는 “당신이 그 상황에서 죽어가는 나치를 용서하지 않은 것이 잘한 일이라고 확신한다. 만약 그를 용서하려 했다면 당신으로선 거짓말을 하거나 아니면 스스로에게 끔찍한 도덕적 폭력을 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질문에 응답한 사람 가운데 나는 달라이 라마의 말씀이 가슴에 남는다. “기억하되 용서하라.”
죽음 직전, 어렵게 입을 연 그 청년의 한마디가 왠지 ‘인간’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슈투트가르트 출신입니다. 애초부터 살인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살인자가 됐을까? 이 용서의 문제는 개인적인 측면이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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