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잠언집’에 있는 말씀을 신년의 입춘 부처럼 독자에게 전하고 싶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고.
얼어붙은 땅에도 꽃은 피고 경자(庚子)년 백서(白鼠)들도 배곯는 일 없으며,
신문 읽기가 두려운 기사 따위는 만나게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왜 모두 행복하지 못한가. 아마도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 아닐까 한다.
더 많은 것을 쟁취하기 위해 불법이 자행되는 사회,
악의 순환이 거듭되는 정의롭지 못한 나라에서 행복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덜 갖고도 더 많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법정 스님은 타이른다.
‘더 검소하고 작은 것으로써 기쁨을 느껴야 한다’고 다독인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있다’고 우리를 깨우쳐준다.
그러나 최저생계비도 허락되지 않는 불공정한 현실에서 그 말씀은 얼마나 실효가 있을까? 국채(國債)는 점점 늘어나고 국민에게 돌아가는 1인당 빚은 1400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올해는 쥐의 해,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을까. 소비도 줄이고 그에 앞서 욕심부터 줄여야 할 것 같다.
나는 10여 년 전 피지에서의 밤하늘을 잊지 못한다. 손에 닿을 듯 눈앞에 주먹만 한 별들이 푸카푸카 숨 쉬는 게 느껴졌다. 부레(Bure·초가집)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나발라촌의 원주민들은 전기도 없이 온 식구가 방 하나에 거처하면서 손으로 빵을 뜯어 먹고 찻잎을 따서 손님 앞에 내놓는다. 밤하늘의 별이 왜 그토록 영롱했는지 알 것 같았다. 태어날 때 질량(자체 식량)을 갖고 온 별들은 다툼이 없다. 가장 적은 에너지를 쓰면서 이웃과 조화롭게 관계 맺는 저 별들처럼 욕심을 줄여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병든 지구에서 다른 생명들과 얼마나 더 어울려 살 수 있을까? 살아 있는 생명들은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