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한울님을 믿으셔라/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捨近取遠) 하단말가
동학 교조 수운(水雲) 최제우(1824∼1864)가 쓴 ‘용담유사’의 교훈가 중 한 토막이다. 한울님이 네 몸에 계시니 먼 데서 찾지 말라는 뜻이다. 그는 경주 용담정에서 수련 정진 중 웬 신선의 말이 들려 깜짝 놀라 캐물은즉 대답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라(…) 나에게 영부(靈符)가 있으니 그 이름이 선약(仙藥)이요, 그 모양은 태극(太極)이요, 또 그 모양은 궁궁(弓弓)이니 내 영부를 받아 사람들의 질병을 고치고 내 주문(呪文)을 받아 사람들을 가르쳐서 나를 위해 하면 너 또한 장생(長生)해 덕을 천하에 펴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종교체험은 그의 ‘동경대전’에 적혀 있다. 수운이 그때 받은 주문은 21자로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이다. 한울님을 내 마음속에 모신다는 ‘시천주(侍天主)’는 동학의 기본 사상이다. 조선 조정은 동학을 혹세무민의 사교로 낙인찍어 수운을 참형에 처했다. 그 뒤를 이은 해월(海月) 최시형은 ‘사람을 섬기되 하늘같이 하라’면서 ‘사람이 곧 한울이다’ 인즉천(人卽天)을 강조하며 억눌린 백성들에게 인간의 평등과 인간 존엄의 권리를 일깨우고 갑오동학혁명을 일으켰다. 이는 청·일의 무력간섭으로 실패하고 해월도 처형되고 만다.
제3대 교조가 된 의암(義菴) 손병희는 1905년 동학을 천도교(天道敎)로 선포했다. 수운의 ‘시천주’는 해월의 ‘인즉천’으로, 의암에 와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됐다. 동학혁명은 실패했음에도 그 후 그들의 민족의식은 3·1운동의 근간이 됐다. 어제는 101주년이 되는 3·1절, 선조들의 희생과 순교에 삼가 옷깃을 여민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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