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릅나무 토막은 이미 단두대에 올려져 있었다
나는 차마 그 목에 톱질을 할 수는 없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의 수필 ‘느릅나무’의 한 구절이다. 원고지 채 2장도 되지 않는 짧은 글에 강타당한 기분 좋은 충격, 그건 카프카의 ‘도끼’처럼 내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충격이었다.
‘나는 톱으로 장작을 켜다가 느릅나무 토막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난해에 느릅나무를 잘라 트랙터로 운반하다가 토막을 쳐서 더러는 뗏목에 쓰기도 하고 어떤 것은 통나무째 쌓아 두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땅에 굴려 두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느릅나무 토막에서 파르스름한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 싹은 장차 느릅나무로 크거나 우거진 나뭇가지가 될 수도 있는 어김없는 하나의 생명체였다. 느릅나무 토막은 이미 단두대에 올려져 있었다. 나는 차마 그 목에 톱질을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살아 있는 목을 자를 수 있으랴. 그도 살기를 원하는데, 우리보다 더 간절히 살기를 원하는데 어찌 그 목을 자를 수 있겠는가.’(전문)
작가는 톱으로 장작을 켜다가 느릅나무 토막에 돋아난 새싹과 마주친다. 단두대에 올려진 목숨 - 그것과 환치되는 기억. 짧은 순간에 나는 그의 침묵 속에 용해되고 만다. 작가는 스탈린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8년간을 감옥과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지낼 때 겪은 고통과 단두대의 참상을 떠올린다. 그 후로도 솔제니친은 3년간을 더 강제 추방당했었다.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나 러시아 정부가 귀국을 허락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서 시상식에도 참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용소 군도’ 출간으로 1974년 추방돼 20년간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그의 단편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나 ‘암병동’ 같은 소설도 좋지만, 일침으로 우리의 정신을 환기시키는 그의 수필 또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필가
'맹난자의 한줄로 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연은 藥과 같다 (0) | 2021.09.21 |
---|---|
월든 호숫가의 소로 (0) | 2021.09.21 |
평등사상 (0) | 2021.09.21 |
페스트 (0) | 2021.09.21 |
루소의 횃불 (0) | 2021.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