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실천할 때,
존재의 실상인 오온이 다 공함을 비추어 보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났느니라.
반야심경’의 서두로 불교의 요체를 함축하고 있다. ‘오온개공(五蘊皆空)’을 알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붓다의 처방전이기도 하다. 괴로움이 생기는 것은 내(我)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존재를 5온(蘊) 즉 몸(색·色)과 정신적 요소인 수상행식(受想行識:감수· 표상·결합·분별작용)의 다섯 요소로 규정한다. 마치 여러 목재가 모여 수레라 일컫는 것처럼 오온이 모인 것을 존재(중생·衆生)라고 부른다. 어느 하나 실체적인 것이 아니다. 오온에 아(我)는 없다. 무아(無我)다.
“끌어모아서 얽어매면 한 칸의 초가집. 풀어헤치면 본래의 들판인 것을.”
위의 시구처럼 ‘나’란 나를 포함한 일체의 현상이 원인과 조건으로 연기(緣起)된 것이기에 실체가 없으며 본질적으로는 공(空)이다. 공을 안다고 하는 것은 존재의 본질(실상·實相)에 대한 지혜이다.
“색(色)은 무상(無常)한 것이요, 수상행식도 무상한 것이다. 색(육체)에는 ‘나’가 없고 수상행식에도 ‘나’는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나’가 아니요, 내 것도 아니며 나와 내 것은 꼭 있어야 할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해탈하면 곧 하분결(下分結·족쇄)을 끊으리라”던 붓다의 게송이 떠오른다. 왜 수상행식에 ‘나’가 없다고 하는가? 식(識)은 우리의 감각기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6근(根)과 상응 물질인 형태, 소리, 냄새, 맛, 감촉, 생각의 6경(境)이 부딪쳐 안식(眼識) 등 여러 가지 정신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무아란 식(識)에 연기된 마음의 공성(空性)을 아는 일이다. 내가 없는데 어디에 고통이 따라붙겠는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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