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난자의 한줄로 고전

내가 처한 상황이 나라는 존재를 보여준다

bindol 2021. 9. 21. 08:20

인간은 현상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 때문에 불안해진다.

 

2세기 로마의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에픽테토스의 ‘담화록(Discourse)’에 들어 있는 글귀다. 그는 터키 영토인 히에라폴리스에서 노예로 태어났다. 첫 번째 주인에게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는 바람에 평생 다리를 절었는데, 두 번째 주인인 에파프로디투스가 그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노예 신분에서 풀어주고 스토아 철학자인 무소니우스 루푸스 밑에서 공부하도록 도왔다. ‘철학이란 정신과 육체의 훈련’이라고 강조한 철학자는 그의 스승 루푸스였고, 신경과학자들은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인간 두뇌의 놀라운 능력을 ‘가소성’이라고 불렀는데 이 가소성을 처음으로 주목한 사람이 바로 에픽테토스였다. 그는 ‘담화록’에서 “인간의 정신보다 더 다루기 쉬운 것은 없다”고 말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는 에픽테토스의 “인간은 현상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 때문에 불안해진다”는 말에 큰 감명을 받고 인지행동치료의 핵심인 ‘감정의 ABC모델’을 개발했다. 엘리스는 에픽테토스의 견해대로 인간은 사건에 대한 생각이나 의견을 바꿈으로써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억압된 상태에서 어떻게 자기 영혼의 주인으로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에픽테토스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상기하라고 조언한다. 세상 일들에 대해 우리의 통제력은 사실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삶의 대부분을 화가 난 채 두려워하며 비참하게 보내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 그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는 건 그가 처한 상황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조차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할 힘은 여전히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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