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난자의 한줄로 고전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

bindol 2021. 9. 21. 08:18

千世之後 其必 有人與人 相食者也

천 년 뒤에는 틀림없이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는 날이 올 것이다

 

장자(莊子)는 ‘경상초(庚桑楚)’ 편에서 말한다. “만일 현자를 등용한다면 백성은 저마다 등용되려고 서로 다투게 되고, 지혜 있는 자에게 벼슬을 맡기면 백성은 모두 간악해져 서로 속이게 된다. 백성은 자기 이익만을 위하게 되고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고, 신하가 임금을 죽이며 대낮에 강도질·도둑질을 하게 된다. 밝혀두건대 천 년 뒤에는 틀림없이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는 날이 올 것이다.” 스펙 좋은 사람을 우대하면 스펙 때문에 (위조하려는) 폐단이 생기고, 지식은 점차 교활한 도구로 전락해 고등수법 범죄가 우리의 예측을 불허하게 한다. 장자의 이런 예언을 일찍이 주목한 또 한 사람이 있었으니 작가 루쉰(魯迅)이다.

당시 중국은 봉건 왕조가 몰락하고 서방 제국의 침입을 받아 풍전등화와도 같은 상태였다. 루쉰은 일본에서 의학 공부를 하다가 ‘정신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문학밖에 없다’며 문학으로 뜻을 바꿨고 ‘광인일기’ ‘아Q정전’ 같은 걸작으로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며 민족의 정신 개조와 각성을 촉구하는 데 앞장섰다. ‘광인일기’의 주인공 쿵이지는 자신이 속한 사회를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사회’로, 그 사회의 역사는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역사’로 생각했다. 쿵이지가 펴든 책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 페이지마다 인의도덕(仁義道德)이라는 글자가 삐뚤빼뚤 쓰여 있었는데 … 글자 사이에 온통 ‘사람을 잡아먹는다(吃人·흘인)’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아내가 남편을 어렵지 않게 죽이고, 자식이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과 n번방의 미성년 성착취범들의 후안무치를 목도하는 요즘, 루쉰의 ‘吃人’이란 글자가 떠올라 눈앞을 어지럽힌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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